역사적 이야기

중세의 매춘: 비난받으면서도 성행했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공식적으로는 비난받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의 서비스가 인기였습니다(성직자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파리에서는 매춘부들이 자신들만의 길드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매춘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 불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중세 시대에도 여인들이 몸을 팔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도들의 사생활에 특히 많이 간섭하던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요?

선을 행하는 것은 죄가 아니다

중세 가톨릭 사회에서는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매춘부를 위한 자리가 없었습니다. 부부가 자녀를 잉태하지 않는 모든 성적 행위가 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돈을 받고 성관계를 가진 여성들 역시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른바 '품행이 가벼운 여인들'이 그렇게 엄격하게 평가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이들을 용인했을 뿐만 아니라 돈을 벌 권리조차 인정해 주었습니다. 로잘리 길버트(Rosalie Gilbert)는 저서 『중세 여성의 비밀스러운 성생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여성이 매춘부가 되어 몸을 돈으로 팔았다면 여러 차원에서 죄를 지은 것이지만, 때로는 그다지 나쁜 일로 여겨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강간과 근본적으로 달랐는데, 여성이 성관계에 스스로 동의했고 대가를 받았기 때문에 양쪽 모두 만족할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세의 매춘: 비난받으면서도 성행했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부부가 자녀를 잉태하지 않는 성적 활동은 죄로 간주되었습니다.

"만약 그런 관계가 자발적인 것이라면, 하느님의 눈에 어떻게 잘못될 수 있겠습니까? 어차피 여성을 다른 직업으로 고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거래 당사자 중 한쪽이 억울함을 느낄 경우에만 죄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무관용 원칙을 고수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성 루이 9세(놀라운 일이지만!)가 13세기 중반 매춘을 금지하려 시도했지만, 짐작하시다시피 허사였습니다.

법의 바깥에서

또한 여성들이 매춘에 나서는 경향은 그들의 나약한 성격 탓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의뢰인, 포주, 창관이 죄를 지은 거래에 연루된 여인들 본인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습니다.

반면 매춘부들은 많은 특권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었고, 법정에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으며, 심지어 자신에 대한 소송에서 개인적으로 변론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들은 어느 정도 법 밖에 있었지만, 완전히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세의 매춘: 비난받으면서도 성행했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프란시스와 조지프 기스(Francis & Joseph Gies) 부부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매춘은 태초부터 번성했습니다. 후기 중세까지는 특히 대도시의 장터와 축제를 중심으로 법적으로 규제되었는데, 이는 하녀, 상인, 농부의 딸들에게 부수입을 올릴 기회를 주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매춘부들이 후드나 머리띠 등으로 구별되는 복장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고, 보석이나 특정 장식물을 착용하는 것이 금지되기도 했습니다."

규제는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브리스틀에서는 매춘부가 성벽 안에 머무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고(나병 환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 런던에서는 엄격히 지정된 일부 거리만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파리에서는 매춘부들이 자체 길드를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그 수호성인은 성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강제 매춘

중세 여성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매춘을 선택했을까요? 로잘리 길버트는 15세기 초 파리 인구 7만 5천 명 중 약 3천 명이 품행이 가벼운 여인들이었다고 추산합니다. 1500년 로마에서는 7천 명이 집계되었고, 베네치아에서는 15만 시민 중 1만 1천 5백 명이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직업'으로서 매춘을 선택한 소녀들을 움직인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매춘에 나선 여성 대부분은 빈곤과 생계를 유지할 다른 방법이 없어서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과거의 방종한 행동이나 단순한 험담 때문에 좋은 혼인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이 활동에 강제로 내몰린 가난한 여성들은 흔히 학대당했고 의뢰인과 창관 주인들로부터 신체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짐작하시다시피 하녀들도 때때로 강제로 매춘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세의 매춘: 비난받으면서도 성행했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길버트는 15세기 런던에 살았던 이자벨 레인(Isabel Lane)의 사례를 인용합니다. 농장에서 소녀를 고용한 한 노파, 마거릿 해서윅(Margaret Hathewyk)은 롬바드 스트리트 주민들과 "이자벨의 뜻에 반하여 그녀를 유혹하는 기타 알려지지 않은 남자들"에게 그녀를 맡겼습니다. 그러나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올바른 길로 돌아오다

기본적으로 한번 매춘의 길에 들어선 소녀가 그 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극히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전직 매춘부가 다시 체면 있는 여성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통로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성 마리아 막달레나를 본받아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11세기에 비잔틴 황제 미카엘 4세 파플라고네스가 콘스탄티노플에 수도원을 세우고 품행이 가벼운 여인들도 그곳에서 수도복을 입을 수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연대기 작가 미카엘 프셀로스는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 그 결과 거대한 무리의 여성들이 [창관의] 다락방에서 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수도복을 입으면서 그들은 성격 또한 바꾸었습니다."

1227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오 9세가 '품행이 가벼운 여인들'을 죄악의 길에서 되돌리고자 한 웜스의 사제 루돌프가 설립한 성 마리아 막달레나 수도회를 축복했습니다. 이후에도 여성들을 위한 집회는 계속 늘어났는데, 14세기 몽펠리에의 참회하는 성 카타리나 수도회 같은 곳이 그 예입니다.

중세의 매춘: 비난받으면서도 성행했던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대안은 결혼이었습니다. 물론 원하는 사람이 있고 직업과 결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교황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1198년 인노첸시오 3세는 매춘부와 결혼하여 그녀의 삶을 바로잡는 것은 자비의 행위라고 선포했습니다.

포주들?

평민들에게 도덕적 잣대처럼 보였던 중세 교회는 어떤 의미에서 매춘부를 필요악으로 간주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라고 권고했지만, 정욕을 억누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눈을 감아주었습니다.

더구나 성직자들 사이에도 그런 이들이 있었습니다. 디종에서 창관을 운영하던 한 여성의 꼼꼼한 기록에 따르면, 성직자가 그녀가 관리하는 영업소 고객의 무려 5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제들은 더 나아갔습니다. 길버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윈체스터 주교가 템스강 건너 사우스워크의 창관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임대료를 받았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그의 여인들은 '윈체스터 거위(Winchester Geese)'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수완가인 주교는 관리인들이 임대료를 징수할 뿐만 아니라 매주 여인들의 거처를 검사하고 현재 재산 상태까지 확인하도록 체계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보시다시피 기도하던 중세에도 섹스 산업은 매우 잘 굴러갔습니다. 다만 여성들만 처지가 좋지 않았을 뿐입니다.

참고문헌

  1. J. 기스, J. 기스, 『중세 여성의 삶』, Horizon 2019.
  2. R. 길버트, 『중세 여성의 비밀스러운 성생활』, Rebis 2021.
  3. M. 카르핀스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매춘의 역사』, Iskry 2010.
  4. M. 프셀로스, 『연대기, 즉 비잔틴 한 세기의 역사』, Ossolineum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