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하느님 감사합니다, 총통이 살아 있습니다!" 히틀러 암살 기도에 대한 독일 사회의 충격적 반응

1944년 7월 20일, 국방군(베어마흐트) 소속 장교들이 아돌프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를 감행했습니다. 거의 성공할 뻔했던 이 사건! 나라를 피바다의 전쟁으로 몰아넣은 독재자 타도 시도에 독일 사회는 과연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놀랍게도, 여러분이 예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1944년 중반, 제3제국의 패색이 짙다는 사실은 이미 명백했습니다. 그럼에도 평범한 독일인들은 여전히 히틀러를 맹목적으로 신봉하고 있었습니다. 음모에 가담한 이들조차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기대할 수 없으며, 역사에 '배신자'로 기록될 것임을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일반 독일인들은 벌어진 일 자체를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했습니다. 『총통: 마지막 핏방울까지의 싸움』의 저자 이언 커쇼(Ian Kershaw)에 따르면, 암살 미수 소식이 전해졌을 때 사회 전반에는 깊은 충격과 경악의 감정이 지배적이었습니다(p. 54). 사람들은 국가원수의 목숨을 노리기까지 감행한 소수의 범죄적 장교 무리를 격분하며 규탄했습니다.

수많은 문서가 증명하듯, 암살 기도 이후 정권의 입지는 오히려 더욱 공고해졌고, 사회는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히 드러냈습니다. 물론 권력 기관이 작성한 자료에는 왜곡이 섞여 있지만, 그 규모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독일 국민은 여전히 히틀러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총통이 살아 있습니다!  히틀러 암살 기도에 대한 독일 사회의 충격적 반응

7월 20일 회의 현장(그리고 대폭발)에 남은 흔적은 많지 않았습니다.

SD(친위대 보안국) 요원들은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모든 보고에 따르면 이 사건 소식은 극도로 강렬한 충격, 공포, 분노, 격노의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p. 55)

쾨니히스베르크와 베를린의 거리에서는, 총통이 쿠데타에서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여성들이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안도하며 연신 외쳤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총통이 살아 있습니다!" "총통 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겠습니까?"

 하느님 감사합니다, 총통이 살아 있습니다!  히틀러 암살 기도에 대한 독일 사회의 충격적 반응

많은 독일인들은 이제부터는 불복종하는 지휘관을 해임하는 것이 아니라 총살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충성 집회'가 열렸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운집했습니다. 사회는 히틀러가 이제는 자기 진영 내부의 반대파에 대해서도 결코 눈을 감지 말라고 바랐던 것입니다.

물론 나치 당국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어느 정도 왜곡이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일기, 편지, 기록에서도 놀랍도록 유사한 반응이 확인됩니다. 뮌헨의 한 여성은 최전선의 남편에게 이렇게 적어 보냈습니다. "총통이 없었다면 일이 어떻게 돌아갔을지 상상도 할 수 없어요."(p. 57)

한 소령은 일기에 "나쁜 소식이다. 총통에 대한 암살 기도"라며 낙서를 남겼고(p. 57), 텍사스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한 군인은 히틀러가 생존한 사실을 안도하며 기록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국은 그야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혼돈에 빠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장군은 이번 사건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흉악한 암살에 비유했고, 또 다른 이는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검열 당국은 전선으로 오간 편지에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감사의 표현을 확인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연합국마저 제3제국 지도자에 대한 보편적 지지를 인정했습니다. 포로수용소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포로가 된 국방군 병사의 3분의 2 이상이 히틀러를 믿었으며, 그 신뢰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 강해졌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총통이 살아 있습니다!  히틀러 암살 기도에 대한 독일 사회의 충격적 반응

1944년 7월 20일 암살 기도 관련자들의 재판.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이들에게 동정을 보낸 독일인은 극소수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출처: Bundesarchiv, CC BY-SA 3.0).

흥미롭게도 정권은 이 암살 기도 덕분에 적지 않은 재산까지 얻게 됩니다. 부상을 입은 히틀러와의 연대를 표시하려는 기부가 쇄도한 것입니다. 이언 커쇼는 당시 만연한 편집증적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히틀러가 구원받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돈을 보냈습니다. 상당한 금액이 모였습니다(...) 한 부사관은 아내에게 송금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이유는, 총통과의 연대와 감사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그 돈을 국방군 모금에 기부했다는 것이었습니다.(p. 56)

결론은 무엇일까요? 제3제국 붕괴를 눈앞에 두고서도, 독일인들은 히틀러의 집권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그를 민족의 구원자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출처

이 글은 단일 출처에 기반한 짧은 역사 에피소드 자료로, 읽는 데 3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이 글의 기반 자료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이언 커쇼(Ian Kershaw), 『총통(Führer): 마지막 핏방울까지의 싸움』, Znak 출판사(Społeczny Instytut Wydawniczy Znak), 2012, 53~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