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이름이 곧 운명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이름 하나로 미래가 정해졌다

아들이 사제가 되기를 바라십니까? 수녀복을 입은 딸을 꿈꾸십니까?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알맞은 이름만 지어주면 되니까요.

폴란드 국가의 기원을 밝혀주는 귀중한 연대기를 남긴 코르바이의 비두킨트(Widukind of Corvey)는 자신의 경력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성직자가 되리라는 사실은 이미 갓난아기 시절 세례를 받을 때 결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중세학자 게르트 알트호프(Gerd Althoff)는 작센 공작가문에서 오직 성직자가 될 운명을 지닌 아이에게만 '비두킨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결코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었습니다. 중세 초기에는 왕가와 귀족 가문 구성원 개개인의 미래를 정해버리는 특별한 '교회용' 이름들이 한 세트씩 존재했던 것입니다.

브루노, 위고, 아달베로…

앙주 가문에서는 '기도(Guy)'가, 다른 프랑스 가문들에서는 '아달베로(Adalbero)'와 '위고(Hugh)'가 그런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알트호프는 특히 오토 왕조와 독일 상류 엘리트 사이에서 '브루노(Bruno)'가 담당한 역할에 주목했습니다. 이 이름 자체가 교회 조직 안에서의 화려한 미래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름이 곧 운명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이름 하나로 미래가 정해졌다

교황 그레고리오 5세(본명: 케른텐의 브루노)와 황제 오토 3세 (사진 출처: 퍼블릭 도메인)

빌룽 가문 출신의 브루노는 962년부터 베르덴 주교를 지냈습니다. 국왕 하인리히 1세의 아들 브루노는 쾰른 대주교가 되었고요. 또 한 명의 브루노, 즉 케른텐 공작의 아들은 뷔르츠부르크 주교직에 올랐을 뿐 아니라 교황(재위 996~999년)이 되었고, 나아가 가톨릭 교회의 성인까지 되었습니다.

폴란드의 역사가 그제고시 파츠(Grzegorz Pac) 역시 "아이의 영적(성직) 경력 선택에는 흔히 특별한 이름의 부여가 함께 따랐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 관습이 딸들에게도 적용되었다고 보며, 독일 왕조에서는 '기젤라(Gisela)'와 '힐데가르트(Hildegard)'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대수녀원장의 자리에 앉혀졌다고 지적합니다. 이 독특한 전통이 폴란드에까지 전해졌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름이 곧 운명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이름 하나로 미래가 정해졌다

이 글은 그제고시 파츠의 저서 『피아스트 왕조의 여인들』 등을 참고하여 작성되었습니다.

10대 소녀가 수도원으로… 이름 덕분일까?

브라디스와프 헤르만(Władysław Herman) 공작과 잘리안 왕조 출신의 유디타(Judyta)는 딸 중 한 명에게 '아그네슈카(Agnieszka)'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피아스트 왕조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선택을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유디타의 어머니는 바로 독일의 황후이자 왕비인 푸아티에의 아그네스(Agnes of Poitou)였습니다. 폴란드의 군주는 이 이름을 통해 대륙 최고의 권문가와의 인연을 과시했을 뿐 아니라, 아마도 딸에게 눈부신 자리 하나를 마련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아그네슈카 브라디스와프나는 10대 시절, 대륙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수도원 중 하나인 크베들린부르크(Quedlinburg) 수도원의 대수녀원장이 되었습니다. 그보다 앞서 이 수도원의 수장이 된 최소 두 명의 대수녀원장 역시 황후들에게서 '물려받은' 이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의도된 조치였는지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딸에게 하필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만으로도 브라디스와프 헤르만은 독일 교회 내에서 그녀의 서열을 확실히 끌어올렸습니다. 아그네슈카라는 이름이 아니었다면 그토록 높은 영예는 손에 넣기 어려웠을 것이고, 하물며 15세 무렵의 어린 나이에 그럴 리는 더더욱 없었을 것입니다.

이름이 곧 운명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이름 하나로 미래가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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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다른 판본은 잡지 〈뉴스위크 히스토리아〉(Newsweek Historia, 7/2015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