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사랑에 빠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잊혀진 젊은 시절

사디즘에 가까운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여장을 하고 도시를 탈출했으며, 1,300km 떨어진 곳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게다가 상대는 자신의 의붓자매였습니다.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잊혀진 젊은 시절을 들여다봅니다.

사담 후세인은 1937년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년기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고, 어린 사담은 잔혹한 의붓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훗날 그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어머니는 재혼했지만 사람을 잘못 보았다. 하지 이브라힘 알하산은 어머니에게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분명 그의 농민적인 폭력성 때문일 것이다.”

사담이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를 거둬들인 것은 외삼촌 카이르 알라 툴파였고, 그는 곧 새로운 양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툴파의 두 딸 사지다와 일함은 사담의 의붓자매가 되었는데, 특히 사지다는 사담과 각별히 가까워졌습니다. 다이앤 두크레는 저서 『독재자의 여인들 2』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놀며 학교 생활의 첫걸음도 함께 내디뎠다.”

사랑에 빠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잊혀진 젊은 시절

사진 속 귀여운 아이가 바로 어린 사담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행복한 유년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기에 새 식구가 된 사담은 자매들의 생계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바그다드 거리에서 담배를 팔고, 택시 기사에게 손님을 끌어다 주는 호객꾼 노릇을 했으며, 한동안은 식당 종업원으로도 일했습니다. 마른 청소년이던 그는 소년에게 홀린 남성들의 구애를 물리쳐야 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외삼촌은 젊은 사담에게 점점 따를 수 없는 롤모델이 되어갔습니다. 영국 점령 당국 전복 음모에 가담했다가 복역하고 막 출소한 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소책자의 저자이기도 했는데, 제목만으로 그의 편향된 세계관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신이 쓸데없이 창조한 세 가지. 페르시아인, 유대인, 그리고 파리.” 이런 독서를 통해 사담 역시 이라크 민족주의자이자 범아랍 운동의 지지자로 성장해 갔습니다.

스승의 발자취를 따라 군인이 되려 했지만 육군사관학교 입학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플랜 B를 선택했습니다. 치안부대에 복무하는 대신, 강도단의 일원으로 그 부대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1959년, 사담은 이라크 총리 압델 카림 카심 암살 미수 사건에 가담했습니다.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고 공모자들은 모두 사살되거나 붙잡혔습니다. 경계 임무를 맡았던 사담만은 발목에 소총탄을 맞으면서도 간신히 탈출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잊혀진 젊은 시절

사담 후세인의 아내 사지다 툴파. 『독재자의 여인들 2』에 실린 사진 중 발췌.

그는 여장을 하고 바그다드를 빠져나가 사막을 건너 시리아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 범아랍 반군의 안식처인 이집트로 떠났습니다. 나일강변에서 그는 서구적 삶의 맛을 익혔습니다. 법학에 등록하고, 카페에서 하루를 보내며 사회주의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다 몇 달 뒤, 이제 결혼할 때가 됐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벌써 스물셋이었으니까요!

사랑에 빠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잊혀진 젊은 시절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다이앤 두크레의 『독재자의 여인들 2』(즈낙, 2013)를 바탕으로 합니다.

후세인은 오랫동안 의붓자매 일함에게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의 압박에 못 이겨, 나이 어린 사지다와 결혼하기로 합니다. 애정이 아니라 가문에 대한 의무감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독재자가 된 그의 지인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그는 사지다에게서 ‘누이’를 보았다. 그녀를 한 여자로 받아들이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신부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남자들이 대신 결정해 준 것이죠. 설상가상으로 그녀는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했습니다. 결혼식과 피로연이 사담이 머물고 있던 이집트에서 열렸기 때문입니다. 신랑은 허니문도 혼자 떠났습니다. 나일강을 따라 피라미드까지 올라가는 배 여행이었죠. 한편 사지다는 집에서 우편으로 배송된 결혼반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잊혀진 젊은 시절

10대 시절의 사담. 1940년대 말에 찍힌 사진.

바트당과 CIA가 합작한 쿠데타가 성공하면서 3년 만에 사담은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카이로에서 법률 공부를 마친 그는 마침내 혼인을 완성하기 위해 바그다드로 신들린 발걸음으로 달려갑니다.

귀국 후 그는 늦은 결혼식 사진 촬영까지 지시했습니다. 다이앤 두크레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신부는 브로치와 귀걸이를 하고, 옅은 화장에 짧은 머리를 단정하게 연출했다. 사담은 옅은 미소를 짓는다. 유난히도 콧수염을 깎았고, 정장에 넥타이 차림이다.”

이렇게 미래의 독재자는 본격적으로 성인의 삶을 시작하며 위대한 정치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수많은 파란과 수년간의 감옥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미래를 향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1967년에는 감옥에서 탈출합니다. 실제로는 간수들을 식당에 저녁 식사로 초대한 뒤, 뒷문으로 슬며시 빠져나간 것이었습니다. 1968년에는 외삼촌의 남편인 하산 알바크르가 이라크의 권력을 잡도록 도왔고, 그 자신도 선전·교육부 장관과 부통령에 임명됩니다. 그리고 11년 뒤, 마침내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됩니다.

출처:

이 글은 다음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다이앤 두크레(Diane Ducret), 『독재자의 여인들 2』(Women Dictators 2), 즈낙(Znak) 출판연구소, 크라쿠프,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