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4년 바르샤바 봉기 당시 하수도를 통과해야 했던 병사들은 그곳을 인생 최악의 경험으로 기억합니다. 더럽고 어둡고 악취가 나는 곳이었지만, 수많은 생명을 구원한 통로이기도 했습니다.
1944년 8월 한 달의 절반 이상 동안, 바르샤바 구시가지는 봉기 전체에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투의 무대였습니다. 다른 지역과 완전히 차단된 채 소멸을 기다리던 구시가지의 운명은 그 달 마지막 날에 닥쳐왔습니다.
당시 19세의 위생병이었던 테레사 라틴스카('테레사')는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했습니다. 안나 헤르비흐의 저서 『봉기의 소녀들』에서 그녀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언제든 시내 중심가(슈로드미에시체)로의 철수가 시작될 예정이었죠. 일부는 하수도를 통해, 나머지는 작센 정원을 거쳐 이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녀에게 맡겨진 것은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작업 전체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병력을 철수시켜 다른 지역에서 계속 싸우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폴란드군 진지를 위협하며 공격을 강화하는 독일군을 감안할 때 이 임무는 특히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적이 모든 탈출로를 차단한 상황에서 적을 속일 유일한 방법은 이것뿐이었습니다.
비명과 폭발음 사이에서
맨홀 입구까지 가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철수는 단 한 곳, 즉 전선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크라신스키 광장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구시가지 곳곳에서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테레사' 부대는 9월 1일 밤부터 2일 새벽 사이에 이동했습니다. 모두 최대한 빨리 움직이려 했지만, 다음 날 아침 정확히 7시, 독일군의 폭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간신히 도착했을 때 그들이 목격한 것은 끔찍한 광경이었습니다. "패닉 상태였습니다. 독일군이 총을 쏘고, 민간인 무리가 밀려들면서 사람들을 짓밟아 죽였습니다. 모두가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하수도 입구를 지키던 헌병대는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하수도 안에 휘발유를 부어 불을 질렀던 것입니다. 병사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포와 죽음
그런데 이미 날이 밝아버린 상태에서 어떻게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하늘에 비행기가 나타났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즉시 흩어져 도망쳤습니다. 운 좋게 남아 있는 잔벽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었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부상자와 노약자들은 땅바닥에 웅크려 어떻게든 살아남기를 빌었습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의 비명은 폭발음에 파묻혔습니다.
잠시 후 폭격은 끝났습니다. 테레사는 주변에 죽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근처에서는 누군가 매몰된 사람들을 파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도 도우려 했지만, 더 이상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수도로 들어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녀는 포로가 된 독일인 군의관에게 붕대 몇 개만 남겨두고 다른 이들을 따라갔습니다.
"저는 여자애들과 함께 머리에 스카프를 묶었습니다. 불타는 휘발유를 만나더라도 머리카락에 불이 붙지 않도록요." 그녀는 한 지옥에서 또 다른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것입니다.
가장 힘든 첫걸음
테레사 라틴스카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데 성공했지만, 항상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부상자들은 종종 밧줄로 내려졌고, 그냥 떨어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래로 흐르는 차갑고 역겨운 오수 속으로 곧장.
그것과 처음 맞닿는 순간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장 혹독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테레사'보다 며칠 앞서 하리나 옝제옙스카('스와프카')가 하수도에 들어선 적이 있습니다. 그녀 부대의 임무는 지하로 이동한 뒤 반코비 광장의 독일군을 공격하여, 슈로드미에시체로 이동하려는 주력 부대에 대한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안나 헤르비흐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취가 제일 고문이었죠.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저런 악취는 못 느껴봤습니다. 기절할 줄 알았어요."
하수도 안의 길잡이들에게는 막중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끄는 사람들의 생명은 대부분 길잡이에게 달려 있었습니다.
아무도 환경에 익숙해질 시간은 없었습니다. 지상에서 기다리는 거대한 행렬은 최대한 빨리 이동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테레사'의 부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밧줄을 쥔 채 지하에서 길을 잃기란 쉬운 일이었지만, 그들은 걷기 시작했습니다.
시신에 발이 걸리다
행군은 고단했습니다. 몇 주간의 전투에 지친 그들은 무기와 부상자를 짊어진 채 거의 네발로 기어야 했습니다. 하수도의 일부 구간은 높이가 1.5미터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물과 오물이 신발에 차올라 발을 떼기조차 힘들었습니다.
매미터를 전진할 때마다 장애물은 늘어갔습니다. 앞서간 병사들이 버리고 간 장비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습니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했습니다.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걸리지 않도록요. "한 구간에서는 부상자를 실은 들것이 하수도에, 물속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 사람을 그곳에 버린 겁니다…" 하수도에서 시신을 발견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그런 광경은 정신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수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것 같은 충격만으로도 패닉에 빠지곤 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즉시 진정시켜야 했습니다. 독일군이 들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맨홀 위에서 기다리다가 때때로 뚜껑을 열고 수류탄을 던져 넣었습니다. "아주 작은 소리 하나가 우리를 배신할 수 있었습니다."
지상으로 가는 길은?
지하 행군이 불쾌한 돌발 변수와 얽힐 수 있다는 사실을 '테레사'는 뼈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어느 순간 최악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녀는 순식간에 이해했습니다. 자신이 길잡이 없이 남겨졌다는 사실을 뒤따르는 이들에게 알릴 수 없다는 것을! 그것은 곧 패닉으로 이어질 것이고, 그 결과는 재앙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빠르게 생각을 굴렸습니다. 우선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녀는 밧줄을 팔에 감아 최대한 팽팽하게 유지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언젠가 다른 이들을 따라잡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녀는 섬뜩한 것을 보았습니다. 하수도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올바른 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발끝으로 바닥을 더듬으며 길을 알려줄 만한 물건을 찾았습니다. 외투라든지, 신발이라든지… 무엇이든! 헛수고였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그녀는 감으로 길을 골랐습니다.
구원받다!
점점 지쳐가던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래! 그거야! 바로 앞쪽에서 성냥불이 보였습니다. "구원받았구나! 나는 마지막 남은 기력을 짜내 걸음을 서둘렀고, 온 그룹을 무기력에서 깨워냈습니다."
몇 분 후, 몹시 지쳐 있고 오물투성이에 악취가 나지만 행복한 그들이 지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재킷을 입은 남자들. 깨끗한 원피스를 입은 여자들. 유리창이 온전한 집들. 잎사귀가 달린 나무들. 구시가지의 악몽은 아직 이곳까지 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일단은, 피난민들은 거의 한 달 만에 처음 맞이하는 평화의 순간을 만끽했습니다.
테레사 라틴스카의 이야기는 지하에서 벌어진 비극에도 불구하고, 하수도가 봉기에서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하수도는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하는 통로가 되었으며, 폴란드인들의 놀라운 기지를 증명했습니다. 봉기 진압을 총괄한 에리히 폰 뎀 바흐-첼레프스키조차 전투가 끝난 후 이를 인정했습니다. 그는 독일군이 하수도가 그런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했다고 실토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병사들은 하수도를 이용해 적을 두 번 더 속이는 데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