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D에서 에이즈까지
네덜란드가 에이즈와 처음 마주한 것은 1982년이었다. 당시에는 동성애 남성만 감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이 질병은 GRID(Gay Related Immune Disease, 게이 관련 면역 질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84년, 이 질병이 HIV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이에 네덜란드 정부는 1987년 "안전하게 사랑하자! 에이즈를 막자"라는 슬로건과 함께 첫 대국민 홍보 캠페인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여러 항바이러스제를 병용하는 복합 치료(항레트로바이러스 칵테일 요법)가 서구권에서 에이즈 치료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에이즈는 더 이상 곧장 죽음을 의미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서는 이러한 약을 전혀 또는 거의 구할 수 없다. 2007년에도 에이즈로 인해 21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입안에 곰팡이가 돋았어요'
사스키아는 네덜란드에서 HIV에 감염된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다. 새로운 실험적 약물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1988년, 저는 26살이었어요. 헌혈자로 등록했는데, 혈액은행에서 제 혈액 검사를 진행했고 일주일 뒤 병원에 오라고 연락이 왔죠. 거기서 제 혈액에서 HIV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발견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 무렵 저는 한 남자와 자주 만났어요. 우리는 세 번 함께 잤습니다. 그는 남자와도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지만, 끝내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가 자란 수리남 문화에서는 에이즈가 금기시되는 주제였거든요. 그는 죽는 날까지 자신이 에이즈라는 사실을 부정했습니다."
"여러 가지 병이 몸을 덮쳤어요. 폐렴, 입안의 곰팡이… 어떤 약도 오래 효과가 없었죠. 그렇게 버티다 결국 크게 앓아누웠습니다. 체중은 42kg까지 빠졌고,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어요. 그때 담당 내과 의사가 최후의 수단으로 미국에서 들어온 신약을 권했죠. 그것이 바로 복합 치료였는데,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임상 시험' 단계로만 사용되던 방법이었습니다. 정말 고단했어요.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 약을 챙겨 먹어야 했으니까요. 다행히 복합 치료는 그 후 수십 년간 크게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여성이 HIV 감염자 중 가장 빠르게 늘어나는 집단이에요. 하지만 1980년대에는 에이즈가 '동성애자의 병'으로 여겨졌죠. 안전한 성생활에 대한 캠페인도 없었고, 학교에서 성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임신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낸 휴일은 제가 얼마나 특권적인 위치에 있는지 깨닫게 해줬어요. 그곳의 에이즈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 방대하거든요. 에이즈에 걸린 상태에서, 필요한 약이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구할 수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 저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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