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덜란드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 한 명인 에라스무스(Erasmus)의 생일입니다. 1466년부터 1537년까지 살았던 에라스무스는 인문주의자이자 철학자, 수도사, 작가로 활동한 저명한 학자였습니다. 그는 여성, 전쟁, 기독교 신앙에 관한 견해에서 시대를 크게 앞서갔습니다.
지금도 유효한 에라스무스의 메시지
에라스무스가 저작 속에서 다룬 주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가 호소했던 관용과 인내의 정신은 현대 사회 곳곳에서 생명력 있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에라스무스의 사상이 시간이 흘러도 결코 낡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어리석음의 찬양』
에라스무스는 생전에 수많은 편지와 책을 집필했는데, 대부분 교훈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절 바르게 사는 법』에서는 예법을, 『격언집(아다기아)』에서는 라틴어 격언들을 다루었으며, 기독교인들을 위한 특별한 안내서인 『엔키리디온』도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유명한 저작은 단연 『어리석음의 찬양』입니다. 사실 이 작품은 에라스무스 자신과 친구 토머스 모어의 즐거움을 위해 쓰인 것이지만, 풍자의 형식을 빌렸으면서도 세심하게 읽는 독자에게는 진지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리석음의 찬양』은 에라스무스가 주변에서 목격한 여러 병폐에 대한 분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학자들의 무성의함과 성직자들의 권력욕에 깊이 불쾌함을 느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러한 모순들을 날카롭게 고발합니다. 아울러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다는 논리로 여성의 지위를 옹호했고, 전쟁 대신 관용을, 겉으로 드러내는 종교적 과시 대신 내면의 신앙 생활을 촉구했습니다.
'바보'의 가면을 쓴 비판
에라스무스는 이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자 했습니다. 요컨대 그는 세상에 거울을 들여보인 셈입니다. 하지만 당대의 명성을 지키려면 성역을 함부로 걷어찰 수 없었기에, 그는 '어리석음(바보)'이라는 화자를 내세우는 기발한 장치를 활용했습니다. 덕분에 에라스무스는 익명으로 인간의 우열과 각종 제도를 조롱할 수 있었고, 날카로운 알레고리를 구사했기 때문에 해당 기관들 역시 그를 직접 문책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바보'이지 에라스무스 본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학문, 왕권, 교회에 대한 비판을 은근히 드러냈습니다.
종교개혁과 에라스무스
『어리석음의 찬양』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은 에라스무스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습니다. 로마로부터는 이 책이 가톨릭 교회 개혁의 길을 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종교개혁가 루터와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의 한계를 일부 인정했지만, 루터의 사상은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람들의 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것이 그의 이유였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었으며,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가 서로의 신념을 관용하라고 호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