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스에는 난민에 관한 과장된 표현이 넘쳐난다. 숫자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그에 따른 문제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많은 난민을 대체 어디에 수용해야 할까? 그리고 그들이 우리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라이덴 대학교(Leiden University)의 이주사(移民史) 전공 레오 루카센(Leo Lucassen) 교수가 현재의 이주 물결을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터키 해변의 한 장의 사진이 바꾼 유럽의 분위기
터키 해변에서 익사한 유아 아일란(Aylan)의 충격적인 사진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유럽의 여론은 상당 부분 달라졌다. 국경을 더 이상 닫아두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난민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대응이란 무엇일까? 국제사회사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History) 연구소장이자 라이덴 대학교 이주사 교수인 레오 루카센이 이 시급한 현안에 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거의 백만 명의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오고 있다. 우리 문화에 영향을 줄까?
"최근 몇 년간 유럽에서 발생한 분쟁이나 테러를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극소수의 급진 무슬림과의 충돌임이 드러납니다. 더 큰 무리는 남녀 평등이나 성소수자 인권 같은 문제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만, 정통파 개신교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집단은 특별한 행동에 나서지 않았고, 그들의 신념이 우리의 법률이나 사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적도 없습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위협받고 있지 않습니다. 유럽의 견고함은 실제로 심각하게 과소평가되고 있습니다! 지난 25년간 수백만 명이 유럽으로 이주했지만 우리는 방향을 잃지 않았고, 충분히 잘 관리해 왔습니다. 지금 백만 명의 난민, 주로 시리아인이 유럽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이는 유럽 전체 인구의 0.2%에 불과합니다. 비율로 보면 결코 쓰나미가 아닙니다. 우리 문화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이해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무슬림 이주민이 '유럽 칼리파국'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것은 아니니까요."
과거의 대규모 이주민 집단은 어떤 흔적을 남겼나?
"17세기 네덜란드에는 대규모 난민과 경제적 이주민이 유입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노동력보다 야망이 더 컸고, 선원·군인·노동자들이 대거 찾아와 일자리를 채웠습니다. 전쟁과 박해를 피해 도피한 대규모 칼뱅주의자들도 이 땅에 정착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경제적 도약이었습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황금시대(Gouden Eeuw)'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문화적으로는 긴장도 있었습니다. 당시 네덜란드에서 종교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중요한 존재였고, 오늘날의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에 해당하는 남부 네덜란드 출신의 엄격한 칼뱅주의자들은 지금 우리가 '전형적인 네덜란드적'이라 여기는 것들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그들의 엄격함을 반기는 사람만 있던 것은 아니어서, 나라는 한때 내전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그 날카로움은 사그라들었고, 극소수만 철저한 정통파로 남았습니다."
2014년, 6천만 명의 실향민 — 그때 유럽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난민재단에 따르면 2014년에 약 6천만 명이 고향을 떠났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이주민들은 어떻게 맞이해졌을까? 네덜란드는 예컨대 5년간 광산에서 일할 의향이 있는 난민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노동력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난민은 비교적 빠르게 고향으로 돌아갔고, 남은 수백만 명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수용소에서 보호받았습니다. 당시 유럽은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음에도 그 수백만 명의 수용에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6천만 난민의 압도적 다수는 가난한 아프리카 인접국가 등 해당 지역 자체에 머물러 있습니다."
역사 속 이주 물결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이주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난민의 수는 발생하는 분쟁의 수와 성격에 좌우됩니다. 다만 이제는 더 먼 곳에서 와서 우리가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나면 변합니다. 예컨대 1840년부터 대규모 가톨릭 아일랜드인들이 개신교 국가인 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이 가톨릭 신자들이 결코 진정한 영국인이 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두 집단 사이에 격렬한 폭력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결국 모든 것이 수습되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 터전을 삼은 나라에서 참담하게 잘못된 결말을 낳은 이주민 사례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늘날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 바깥에서 온 수많은 이주민이 이곳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문화·민족적 배경을 지닌 수백만 명의 탈식민지 이주민으로 시작해, 이후 북아프리카와 터키 출신의 이주 노동자들이 유럽으로 몰려왔습니다. 큰 차이점 중 하나는 종교적 배경입니다. 이슬람이 지배적인 변수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는 전쟁 이후 복지국가의 등장인데, 이것이 이주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수용 비용을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난민이 최대한 빨리 일자리를 구해야 하며, 이주 노동자의 경우 사회보장에 대한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접근을 설계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이번 난민 물결은 뉴스에서 떠나지 않을까?
"그것은 난민의 가시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이 커지면서 벌어지는 비극 때문이기도 합니다. 1990년대 초반 알바니아인들이 이탈리아로 건너간 이래, 낡은 배에 가득 실린 난민들이 유럽으로 향해 왔습니다. 우리가 국경을 더 닫을수록 사람들은 더 위험한 경로를 택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지금 뉴스 곳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익명의 집단을 훨씬 쉽게 위협으로 인식하지만, 피해자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면 그 감정은 연민으로 바뀝니다. 터키 해변에서 익사한 유아의 사진 이후가 그렇습니다."
정부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유럽 차원에서 수용을 체계적이고 중앙 집중적으로 조직해야 하며, 즉시 난민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그다음 능력과 필요에 맞춰 난민을 배분하면 됩니다. 즉, 더 많은 난민을 부유한 국가로 보내고, 유럽 각국에서 인력이 절실히 기다리는 직종도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 EU는 이 난민들이 지닌 잠재력이 아니라 문제점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난민을 돕는 것은 좋은 방법인가?
"난민지원단체(Vluchtelingenwerk)가 사람들에게 난민을 자택에 들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은 매우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선의라도 함정이 있고, 이들은 여러 문제를 함께 안고 옵니다. 저는 이것이 해결책으로 가는 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처럼 풍요로운 사회라면 스스로 제대로 처리해야 마땅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 자원을 활용해 수용 비용을 감당 가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난민이 하루빨리 취업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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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의 원문은 네덜란드 과학 지식 플랫폼 케니슬링크(Kennislink)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