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황금시대 네덜란드, 유럽에서 가장 관대했던 나라의 자선 이야기

Kennislink에는 격주로 게스트 칼럼이 실린다. 칼럼니스트는 매번 새로운 연구자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시사 이슈 뒤에 숨은 학문적 배경을 짚어준다. 이번 주는 크리스마스와 라디오 캠페인 '시리어스 리퀘스트(Serious Request)'를 맞아 역사학자 다니엘레 테우벤(Danielle Teeuwen)이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자선 문화를 들려준다.

12월, 나눔의 계절

12월은 가족과 선물, 따뜻한 정을 나누는 달이자 동시에 자선과 베풂의 계절이다. 다른 어느 달보다 자선단체에 더 많은 기부를 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2004년부터는 라디오 방송국 3FM의 DJ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둔 일주일간 '글래스 하우스'에 갇혀 적십자 프로젝트를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올해에는 세계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목표로 단 일주일 만에 무려 1,220만 유로 이상이 모금되었다. 요컨대 12월이면 우리는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지는 것이다.

17세기, 자선은 당연한 의무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자선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기여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빈민 구제는 지역 단위로 체계적으로 운영되었다. 모든 도시와 마을에는 빈민, 환자, 고아를 수용하는 시설들, 즉 후원 안뜰, 여인숙, 고아원, 남녀 노인원 등이 있었다.

또한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도 생계가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매주 빵과 돈을 배급하는 기관들도 있었다. 특히 이른바 '재가 빈민'에 대한 구호 비용은 대부분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많은 도시에서는 교회 헌금뿐 아니라 매달, 심지어 매주 호별 방문 모금도 이루어졌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기부가 요구되었다.

재난과 박해에 맞선 대규모 모금

화재나 홍수 같은 재난이 닥치거나, 유럽 다른 지역에서 박해받는 개신교 신자들을 구제해야 할 때는 대규모 모금 활동이 펼쳐지기도 했다. 이때 모금자들은 전 지방은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전국을 돌며 모금함을 들고 집집마다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이런 대규모 모금은 큰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 시의회는 공식 포고문을 작성했고, 교회에서는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후하게 기부할 것을 당부했다.

열린 그릇의 압박

모금이 끝난 뒤 각 도시에서 결과가 발표되고 타 지역의 모금액과 비교될 때면, 시민들의 관대함을 찬양하는 시가 지어지기도 했다. 특히 이런 일회성 모금 행사에서는 기부 압력이 한층 높았다. 드물지 않게 집사와 부목사뿐 아니라 목사, 심지어 시장까지 직접 호별 방문에 나섰다. 이들은 열린 그릇을 사용했는데, 덕분에 누가 얼마를 내는지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감히 '아니오'라고 말할 엄두라도 내겠는가?

크리스마스와 함께 커진 나눔

크리스마스 무렵은 특히 자선이 강조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도 평소보다 가난한 이웃에게 더 후하게 베푸는 경향이 뚜렷했다. 예배 중 헌금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호별 모금 수입도 대개 더 높았다. 게다가 겨울철에는 돌봄 수요가 늘어나 구호 시설들이 그만큼 더 많은 자금을 필요로 했다.

델프트에서는 매년 성탄절 다음 날(복싱 데이) 도시 전역에서 가난한 이웃을 위한 모금이 진행되었는데, 17세기에는 평균 약 5천 굴덴이 모였다. 18세기에는 이 금액이 거의 1만 굴덴까지 늘었다. 당시 기준으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러한 관대함 덕분에 근대 초기 네덜란드인들은 '당대 가장 관대한 국민'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