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그리스 불, 비잔티움 제국을 지킨 치명적인 비밀 무기

그리스 불은 네이팜과 열핵 폭발물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무기입니다. 당대 사람들에게 이 무기의 기억만으로도 공포를 안겼으며, 한번 나타나면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 비밀이 얼마나 철저하게 보호되었는지, 오늘날까지도 우리는 그것을 재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천둥과 함께 터지는 화염 폭발, 타오르는 검은 연기 — 비잔티움 황제 레온은 이렇게 제국의 기적 같은 무기의 작동 모습을 묘사했습니다. 오늘날 세계는 이 무기를 '그리스 불(Greek Fire)'이라 부르지만, 사실 이 명칭은 훨씬 후대에 붙여진 것입니다. 비잔티움인들은 스스로를 그리스인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고대 로마 전통의 정당한 계승자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 존 홀든(John Haldon)이 저술한 『비잔티움 전쟁: 전략, 전술, 원정』에 따르면, 비잔티움 군대는 7세기 말부터 이 강력한 무기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발명자는 아랍의 위협을 피해 콘스탄티노플로 피신해 온 헬리오폴리스 출신의 화학자 칼리니코스(Callinicus of Heliopolis)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화염 무기는 존재했지만, 칼리니코스(혹은 함께 일한 다른 학자들)가 그 조성과 운용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중세의 네이팜

비잔티움 전문가들은 '그리스 불'을 "기름을 베이스로 한 혼합물로서 네이팜의 원형"이라고 설명합니다. 기름은 카프카스 지방이나 남러시아 대초원에서 채취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다면 이 위험한 액체 혼합물은 어떻게 다루어졌을까요?

제국 함대 대형 선박의 선수(船首)나 선체 중앙에 장착된 관을 통해 분사되었습니다. 실전에서도 충분히 효과적이었지만, 동시에 적을 겁주는 탁월한 무구이기도 했습니다. 10세기 초에는 육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분사기도 개발되었습니다(…).

화염은 약 50야드, 즉 45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까지 뻗어 나갔습니다.

화염 무기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사례는 674~678년, 아랍군이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했을 때입니다. 도시로 접근하던 적 함대가 그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언론인 어니스트 볼크먼(Ernest Volkman)은 자신의 저술에서 이 전투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아랍 함대를] 마주하기 위해 소수의 작고 민첩한 비잔티움 갤리선이 출항했습니다. 소형 선박 특유의 우월한 기동성을 활용해 비잔티움인들은 사라센 배에 접근했고, 갑판 아래의 선원들은 필사적으로 펌프질을 했습니다. 궁수들의 호위 아래 한 병사가 노즐을 목표물에 겨누었습니다.

액체가 노즐에 도달하자, [비잔티움 병사는] 두 개의 부싯돌을 비벼 불꽃을 일으켰고, 액체는 50야드 거리까지 뿜어져 나오는 액체 화염의 줄기로 변했습니다. 사라센 배들은 하나둘 불길에 휩싸였고, 나머지는 공포에 질려 도망쳤습니다.

'그리스 불'은 곧 중세 군대의 진짜 공포가 되었습니다. 존 홀든은 "아랍인들이 심지어 난연성 의복을 갖춘 특수 부대를 창설하기까지 했지만, 이 발명 앞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합니다. 치명적인 화염에 직격당한 이들이 어떤 고통 속에 죽어갔는지는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이 비밀 무기 덕분에 비잔티움은 무적의 제국처럼 보였고, 그 요새는 난공불락의 성채로 여겨졌습니다. 황제 알렉시오스 1세 코무네노스의 딸 안나 코무네나는 1113년경 로도스 근해에서 벌어진 피사 함대와의 해전을 기록했습니다. 적들은 평소 위로 뻗던 화염이 발사자의 의지에 따라 사방으로 자유롭게 뻗어 나가는 모습을 공포에 떨며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적들의 얼굴 위로 화염의 회오리처럼 내리꽂힌다"고 비잔티움의 공녀는 자랑스럽게 적었습니다.

철저히 지켜진 비밀

살상 혼합물의 정확한 배합법은 오늘날까지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비잔티움인들은 이 비밀을 눈동자처럼 지켰고, 심지어 이것이 하느님이 내린 선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은 제국의 수도를 건설한 콘스탄틴 대제가 이 무기를 후손에게 물려주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리스 불의 제조법은 문자로 기록하는 것이 금지되었고, 이를 조제하던 화학자들은 비밀을 절대 누설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했습니다. 비밀의 최종 수호자는 황제 자신이었으며, 완성된 제품만이 가장 신뢰하는 동맹국에 보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방 조치가 100% 효과를 거두었다고 믿지 않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스 불의 역사를 면밀히 연구한 화학자 제임스 R. 파팅턴(James R. Partington)은 아랍인들 역시 같거나 유사한 혼합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도를 상대로 이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븐 알아시르(Ibn al-Athir)는 1189~1191년 아코 포위전을 기록하며, 비밀 혼합물을 이용해 기독교도들이 숨어 있던 탑을 불태울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불은 순식간에 탑 전체로 번졌고(…) 그 속도가 너무 빨라 기독교도들은 내려갈 시간도 없이 무기를 든 채 불타 죽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가 말한 것이 바로 그리스 불이었을까요?

비잔티움에서 이 무기는 12세기경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존 홀든은 『비잔티움 전쟁』에서 "발사 과정 자체가 그리스 불이 적에게 주는 위험만큼이나 비잔티움인들 자신에게도 위험했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것을 재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