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마스크만으로는 부족했다! 소련이 전염병과 싸운 극단적 방역의 역사

소련은 1930년대에 이미 수많은 감염병을 박멸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소련 시민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수입된' 전염병과 맞서야 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위험한 세균과 싸우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실로 가혹할 정도였습니다.

볼셰비키 혁명 직후 내전 기간 동안 소련에서는 발진티푸스가 창궐했습니다. 병원에는 약품이 부족했고 의료 시설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에, 환자들은 생명이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즉시 퇴원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수도에서 병에 걸린 지방 출신 환자들은 퇴원 후 곧바로 역으로 향해 그곳에서 요양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마스크만으로는 부족했다! 소련이 전염병과 싸운 극단적 방역의 역사

소련 당국은 콜레라 유행과도 끊임없이 싸워야 했습니다.

독감의 발생률 역시 높았습니다. 독감 확산은 기본적인 위생 수칙 미준수로 더욱 촉진되었지만, 대부분 문맹이었던 소련 시민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일상생활에서 위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일련의 홍보 캠페인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재적인 위생 캠페인

그중 하나가 1926~1927년 독감 유행 기간에 벌어진 캠페인이었습니다. 첫 번째 유행은 1926년 겨울 전국을 강타했습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만 주당 1만 2천 명이 독감에 걸렸습니다. 봄과 여름 동안 당국과 의료 당국은 다음 유행에 대비해 수천 개의 추가 병상을 마련하고 새로운 환자 관리 규정을 수립했으며 환자 수송용 차량까지 준비했습니다.

또한 수십만 장의 전단지가 인쇄되어 독감이 "키스, 기침·재채기·침 뱉기 시 침방울과 가래의 비산, 식기와 수건의 공유, 악수, 여러 사람이 한 침대에서 함께 잘 때" 전파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전단지에는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휴지로 코와 입을 가리고, "해바라기씨 껍질을 바닥에 뱉지 말 것", 집에 돌아오면 손과 얼굴을 꼼꼼히 씻고, 환자의 속옷은 삶아 빨며, 방을 자주 환기하라는 조언이 담겨 있었습니다.

문맹자들에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알록달록한 포스터가 붙은 '위생 선전 열차'가 전국을 누볐습니다. 객차에는 교사들이 탑승해 지역 회관과 클럽에서 강연을 열고 시민들과 청결과 위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스크만으로는 부족했다! 소련이 전염병과 싸운 극단적 방역의 역사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시민이 많았기 때문에 포스터 역시 전염병 퇴치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학생들이 교육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 수업 후 배운 내용을 점검하는 퀴즈도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에게 던져진 질문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왜 가족 구성원마다 각자의 수건을 사용해야 하는가?"

우승자에게는 비누 한 덩어리, 책, 치약이 상으로 주어졌고, 우스꽝스러운 민요 '차스투시카'도 불렸습니다. "씻지 않고 깨끗하지 않은 자는 나쁜 공산주의자다." 이러한 활동은 성공적이었고, 두 번째 유행은 첫 번째보다 훨씬 온건하게 지나갔습니다.

모스크바를 덮친 흑두창

그러나 독감만이 소련 당국과 의사들의 과제는 아니었습니다. 더 위험한 적, 즉 두창과도 맞서야 했습니다. 이 질병의 가장 위험한 사례 중 하나는 1959년 말부터 1960년 초 소련의 수도에서 발생했으며, 당시 45명의 모스크바 시민이 감염되었습니다.

'0번 환자'는 53세의 유명 화가 알렉세이 코코레킨이었습니다. 1959년 12월 21일, 그는 인도에서 돌아왔는데, 그곳에서 두창으로 세상을 떠난 브라만(힌두 성직자)의 화장 의식을 목격했습니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그는 고인의 것이던 융단을 사들였습니다. 귀국 이틀 후 코코레킨은 몸이 좋지 않음을 느꼈고, 진료소에서 독감 진단을 받고 안정을 취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화가의 상태는 계속 악화되어 결국 구급차에 실려 보트킨 병원으로 옮겨졌고, 12월 29일 저녁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부검 과정에서 병리학자는 사인을 특정하지 못했습니다. 소련에서는 흑두창 사례가 30년간 없었기 때문입니다. 1960년 1월 13일에 소환된 경험 많은 75세 의사는 시신을 한 번 본 것만으로 정확한 진단을 내렸습니다.

KGB, 보건부, 내무부가 즉각 경계 태세에 들어갔고,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에게 역학적 위협이 보고되었습니다. 보트킨 병원은 검역 상태에 놓여 아무도 출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스크만으로는 부족했다! 소련이 전염병과 싸운 극단적 방역의 역사

고인과 접촉한 모든 사람이 추적되었습니다. 소련에는 시민 통제 시스템이 탁월하게 갖춰져 있었기 때문에, 불과 일주일 만에 거의 1만 명이 파악되었습니다. 코코레킨이 탑승한 항공기의 승객과 승무원, 모스크바 공항의 세관원과 국경경비대, 귀국 후 화가가 방문한 친구들, 그가 인도 기념품을 맡긴 위탁판매점의 판매원들까지 모두 포함되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가족, 친구, 동료들까지 조사 대상에 올랐습니다.

코코레킨과 직접 접촉한 사람들은 병원에 입원했고, 나머지는 가정 격리 조치를 받으며 의사의 하루 두 번 방문 검진을 받았습니다. 인도 크루즈 승객 중 한 명이 모스크바를 떠나 파리로 향한 것으로 밝혀지자, 해당 항공기는 강제로 회항시켰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로 드나드는 도로가 차단되고 열차와 항공편이 취소되었습니다. 모스크바 시민과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이 시작되었습니다. 수도 대학 학생들을 포함해 약 3만 명의 의료 인력이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1월 15일부터 25일까지 단 10일 만에 1천만 명이 예방접종을 받았습니다. 모스크바 시민 550만 명 이상, 모스크바 주 거주자 400만 명 이상이 접종 대상이었습니다.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조치는 기대한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환자 45명 중 사망자는 3명에 불과했습니다. 마지막 환자는 1960년 2월 3일에 진단되었습니다. 위험한 병원체의 확산을 막고 국가를 전면적 유행으로부터 구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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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와 싸우는 군대

러시아는 콜레라의 타격도 입었습니다. 최초의 환자는 1970년 8월 초 바투미에서 기록되었고, 이후 아스트라한에서 더 많은 환자가 발생해 537명이 입원했습니다. 이어 사라토프, 티라스폴, 볼고그라드, 노보로시스크, 키로프에서도 콜레라 환자가 잇달아 확인되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곳은 오데사와 케르치로, 그곳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8월은 휴가철이었기 때문에 해안가에는 수천 명의 소련 시민이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당국은 이들 두 도시에서 휴객들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했지만, 출발 전에 반드시 격리를 거쳐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지역 항구에 19척의 여객선이 정박했습니다. 강제 격리 기간이 끝난 후 5만 명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휴객들의 출발이 전염병 퇴치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날 케르치에서는 무려 1,520명의 신규 콜레라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당국은 두 도시를 외부 세계로부터 완전히 차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누구도 이 도시를 떠날 수도 들어올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케르치 봉쇄에는 군인 9,400명, 헬리콥터 22대, 선박 26척이 투입되었습니다. 오데사 출입 도로는 군복을 입은 병력 5,000명, 선박 9척, 헬리콥터 5대가 순찰했습니다. 질병과의 싸움에는 의료진 2,500명과, 증상이 있는 사람들을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이송한 적십자 자원봉사자 7,500명 등도 참여했습니다.

물론 오데사와 케르치의 모든 주민이 이러한 제한을 준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패닉에 빠진 사람들은 위생 봉쇄선을 빠져나가려 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진취적인 시민들은 배로 피난민을 운송하는 불법 장사까지 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혹할 정도로 강경했던 방역 조치는 효과를 거두었고, 1970년 9월 중순에는 질병이 완전히 박멸되었습니다. 환자 사망률은 1%에 불과했습니다.

참고 문헌

1. 필리모노프 A., 페스트, 콜레라, 흑두창…, "베르시야", 2020년 3월 23일.
2. 쿠르가노프 D., 비밀 검역: 러시아에서 가장 위험했던 전염병들.
3. 안필로그프 A., 반세기 전 소련은 이미 한 차례의 전염병을 이겨냈다., "브즐랴드", 2020년 4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