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우체국에서 시작된 원격 교육, 그리스는 왜 기회를 놓쳤나

우체국과 함께 태어난 원격 교육

그리스에서 원격 교육을 맡았던 이들의 노고를 헐뜯으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사실 원격 교육은 지구상에 우체국이 존재한 이래로 함께해 온 오랜 개념이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186개국의 12억 명이 넘는 아동들이 학교가 문을 닫은 몇 달 동안 수업을 이어가기 위해 이 방식에 의존했다.

팬데믹 이전부터 성장하던 e러닝 시장

그러나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등장하기 전에도 e러닝은 이미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관련 투자 규모는 2019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186억 6천만 달러에 달했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이 시장은 2025년까지 약 3,5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추산된다.

찬반 양론

갑작스러운 전환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련 연수가 부족했고, 준비 기간이 짧았으며, 인터넷 대역폭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오랫동안 온라인 교육에 몸담아 온 교사들은 데이터가 우리가 알던 교육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고 설명한다. 채팅 그룹, 화상 회의, 문서 공유 등을 통해 교사가 학생들에게 더 입체적이고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구가 보여주는 e러닝의 효과

연구에 따르면 e러닝은 전통적인 교실 수업보다 무언가를 배우는 데 드는 시간이 40~60% 적다. 학생이 자신의 속도대로 진행하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되돌아보거나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도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은 온라인에서 평균 25~60%의 정보를 기억하는 반면, 교실에서는 8~10%에 그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일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해당된다. 그리스의 대다수 학생들이 겪은 것처럼 컴퓨터조차 모든 학생에게 주어지지 않은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학생의 34%만이 온라인 수업에 접근할 수 있는 반면 스위스는 95%에 달한다. 이 격차가 곧 결과의 차이로 이어진다.

원격 교육의 역사: 1728년에서 오늘까지

그리스의 원격 교육 담당자들이 무엇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완전히 이해하려면, 원격 교육과 관련된 몇 가지 핵심 사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 1728년: 최초로 기록된 원격 학습 사례. 보스턴 거주 케일럽 필립스(Caleb Phillips)가 보스턴 가제트(Boston Gazette)에 우편으로 진행하는 속기 개인 레슨 광고를 게재했다.
  • 1840년대: 아이작 피트먼 경(Sir Isaac Pitman)이 속기 학생들에게 과제를 담은 엽서를 보냈고, 학생들은 우편으로 답했다.
  • 1858년: 런던 대학교가 이 방식으로 학위를 수여한 최초의 대학이 되었다.
  • 1873년: 최초의 정식 통신 교육 프로그램 '가정 학습 장려 협회(Society to Encourage Home Studies)'가 출범했다. 여성의 고등 교육 접근에 초점을 맞췄으며, 보스턴의 작가이자 교육자인 애너 엘리엇 틱너(Anna Eliot Ticknor)의 구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녀는 '통신 학교의 어머니'로 역사에 남았다.

운영 방식: 학생들은 우편으로 학습 지침을 받고, 같은 방식으로 과제를 제출하거나 교수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당연히 답장에는 지연이 있었지만, 우편 서비스가 시스템을 개선하면서 소요 시간도 점차 단축되었다.

  • 1888년: 펜실베이니아 최대의 비영리 교육기관인 국제통신학교(International Correspondence Schools)가 설립되었다. 이민 온 광부들이 광산 감독관이나 직공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에 한 과목씩 보내는 대신 책 전권을 발송하고 1,200명의 프로그램 '판매원'을 동원하면서 학생 수는 폭발적으로 늘어 1895년에는 72,000명, 1906년에는 90만 명에 달했다.
  • 1892년: '원격 교육(distance education)'이라는 용어가 위스콘신 대학교 매디슨의 광고 팸플릿에 처음 등장했다. 1906년에는 같은 대학이 강의를 녹음해 축음기 형태로 학생들에게 보냈다.
  • 1911년: 호주 퀸즐랜드 대학교가 통신 과정을 도입한 최초의 대학이 되었다.

이후 기술 발전이 이어받았다. 라디오의 등장으로 대학들은 정보를 '방송'할 수 있게 되었다. 첫 사례는 1922년 라디오 방송에 뛰어든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Pennsylvania State College)이다. 다만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소통이 일방향이라 학생들이 교수에게 질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10년 후 아이오와 대학교가 학습 도구로 텔레비전을 최초로 사용했고, 1946년에는 남아프리카 대학교가 '원격 교육' 분야의 선두주자로 부상해 오늘날까지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 1956년: 포브스 기사에 따르면 시카고 공립 텔레비전(WTTW)이 교육위원회와 협력해 학점 인정 수업을 '방송'했다. 5년 동안 15,000명이 넘는 학생이 수강료를 지불했다. 다른 지역도 이 사례를 따랐고, 1962년 뉴욕타임스는 '텔레비전 강의로 학위를 딴 최초의 주부'를 한 페이지에 걸쳐 소개했다.
  • 1969년: 영국 노동당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 정부가 '개방대학(Open University)'을 설립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한 순수 원격 학습만으로 운영되는 최초의 대학이었다.
  • 1970년대: 1970년 캐나다로, 1974년에는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독일 하겐의 페른우니베르시테트(FernUniversität)가 유럽 최초의 '개방대학'이 되었으며, 지금도 운영 중이다.

기술이 한 단계 발전할 때마다 대학은 학생들의 '욕구'를 물리적 동석 없이 충족할 새로운 방법을 하나씩 더 갖추게 되었다. 1980년대에는 통신 기술이 절차를 크게 앞당겼다. 그때부터 학생들은 교수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 1984년: 미국 국립기술대학(National Technological University)이 IBM, 모토롤라, HP 등 기업들의 재정 지원을 받아 최초의 공인 가상 대학을 설립했다. 흐름은 커져 대기업들이 직원들에게 텔레비전 기반 '가상' 강좌 수강을 허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 1990년대: 본격적인 혁명은 전자 컴퓨터와 함께 찾아왔다. 1989년 피닉스 대학교(University of Phoenix)가 웹을 통해 학사·석사 학위를 제공한 최초의 교육기관이 되었다. 같은 해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는 '링크로 연결된 노트의 웹'이라고 묘사한 온라인 문서 공유 시스템 개발을 제안했다. 바로 우리가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으로 아는 그것이다.
  • 1995년: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제럴드 매독스(Jerrold Maddox)가 '예술 논평(Commentary on Art)'이라는 강좌로 완전히 웹을 통해 진행되는 최초의 수업을 열었다.
  • 1996년: 기업가 글렌 존스(Glen Jones)와 버나드 러스킨(Bernard Luskin)이 완전히 인터넷 기반으로 운영되는 최초의 인가 대학인 존스 인터내셔널 대학(Jones International University)을 설립했다.
  • 1999년: 'e러닝(eLearning)'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원격 교육은 수많은 교육기관의 일부가 되었고, 10만 명 이상의 학생을 감당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등장해 거대한 수요를 처리했다. 이후 위성 가상 교실, 휴대전화를 거쳐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화상 회의에 이르렀다. 요즘은 온라인 프로그램이 없는 교육기관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다.

이 모든 역사를 되짚어보면 분명해진다. 새로운 현실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해야 할 시점에 필요한 모든 것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의 담당자들은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