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렉상드르 카바넬(Alexandre Cabanel)이 19세기에 그린 클레오파트라
'창부 여왕'이라는 오명
고대 로마의 학자 대(大) 플리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regina meretrix', 즉 '창부 여왕'이라 불렀다. 결코 우호적일 수 없는, 상당히 강한 표현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정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마지막 군주답게, 무분별한 욕망에 치우친 경박한 여인이었을까?
역사가 증명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실제 모습
역사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클레오파트라의 뛰어난 정치 역량이다. 그녀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집트의 자율성과 문화를 지키려 애썼으며, 당시로서는 극히 드문 재능인 여러 언어에도 유창하게 능통했다. 이러한 특징들을 볼 때, 그녀를 어리석거나 평범한 여인으로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미모보다 강한 개성이 남자들을 끌었다
전설처럼만 전해지는 미모보다는, 무엇보다 강렬한 개성이 먼저 카이사르를, 그다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매료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카이사르와의 관계에는 어느 정도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했으리라고 배제할 수 없지만, 클레오파트라가 두 사람에게 느꼈던 사랑과 열정의 진심을 의심할 이유는 없다. 실제로 그녀는 두 남자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를 낳기까지 했다.
음녀 이미지는 누가 만들었나
수백 년 동안 클레오파트라가 방종함과 음란함의 대명사로 그려져 온 것은 크게 그녀에게 적대했던 로마 측 역사 서술의 탓이다. 로마인들이 이집트의 여왕에게 끊임없이 드러냈던 증오와 경멸은, 거의 틀림없이 카이사르가 오만하고 거만하다고 평가되던 그녀를 자신의 곁에 내세운 데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에 피할 수 없는 일종의 남성 중심적 편견이 더해지면서, '유혹의 화신'이라는 낙인은 저절로 완성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