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요한 12세: 음탕하고 폭력적인 젊은 교황

요한 12세: 음탕하고 폭력적인 젊은 교황

요한 12세와 신성로마황제 오토의 만남

이 글은 교회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방탕했던 인물 중 하나로 꼽히는 교황 요한 12세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성 베드로의 자리에 앉은 방탕한 소년

요한 12세: 음탕하고 폭력적인 젊은 교황

교황 요한 12세의 초상

우리는 흔히 교회의 세계가 선함과 자비라는 베일로 감싸여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사제들, 추기경들, 그리고 교황은 지상의 평화와 인류애를 설파하는 존재들이죠.

오늘날에는 대체로 그런 모습이지만, 과거의 교회 문제는 훨씬 복잡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 통일 이전에는 교회가 이탈리아 중부의 여러 영토를 소유했고, 그 수장인 교황이 반드시 선과 자비의 모범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황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모습과 정반대였던 시대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젊고, 성적으로 극도로 방종하며, 심지어 이교적이기까지 했던 최고 성직자가 바로 교황 요한 12세, 즉 제130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황입니다.

시간은 아주 먼 과거, 서기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로마에서는 알베리코 공이 도시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는 정신적 권력과 군사적 권력을 한 인물에게 집중시키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신성로마황제 작센의 오토의 승인 아래, 알베리코는 당시 재임 중이던 교황 아가피토 2세가 사망하자 자신의 아들 옥타비아노가 그 자리를 물려받도록 조치했습니다.

그리하여 서기 955년, 로마 시민들은 정신적 권력과 세속적 권력을 한 몸에 모은 교황 요한 12세의 즉위를 목격하게 됩니다.

나이도 어린 옥타비아노는 겨우 열여섯 살에 교황이 되었습니다. 미성년자가 교황좌에 앉았으니, 그가 남긴 것이라곤 갖가지 악습과 육체적 방종, 그리고 권력에 대한 야망뿐이었습니다. 결코 성인의 모습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아마도 고귀한 혈통과 그가 드나든 사교계 탓에, 어린 옥타비아노는 교황에게 걸맞은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라테라노 궁전에 들어선 그는 온갖 추태를 무색하게 할 만큼 기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여성과 청년들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였고, 그의 침소에는 언제나 창부들이 넘쳐났습니다. 선물과 돈으로 길러낸 일종의 후궁이었던 셈입니다.

사냥을 즐겼던 그는 양떼인 백성보다는 숲속의 짐승 사냥을 더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술을 사랑하고 만취하는 것을 즐겼으며, 종종 고대 이교 신들을 향해 건배를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폭력 행위와 인근 공국들에 대한 전쟁까지 더해졌습니다.

혼란에 빠진 교회와 황제의 개입

이런 상황을 지켜본 황제는 사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직접 로마로 가서 어린 교황 곁에 머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합니다.

그리하여 서기 962년, 오토는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를 넘어 크리스마스 연휴를 로마에서 보냈습니다. 황제가 있는 동안 옥타비아노는 얌전해졌고, 충성을 맹세했으며, 적어도 당분간 교회는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고 황제가 독일로 떠나자,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매춘굴에서 창녀들이 불려왔고, 도시를 홀로 걷던 여인들은 교황의 부하들에게 납치되기까지 했습니다.

바티칸은 빚더미에 앉았고, 건물들의 지붕은 무너져 내렸으며, 하수구는 거리로 범람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요한은 오토의 등 뒤에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제는 요한을 축출할 의도로 다시 성 베드로 대성당을 향해 진군했습니다.

어린 교황은 마치 벌어질 처벌이 두려운 아이처럼, 정부 두 명과 함께 마차에 올라타 도시 밖의 성으로 도주했습니다. 분노한 로마 시민들은 오토에게 성문을 열고 해방자로 맞이했습니다.

옥타비아노를 심판하기 위한 공의회가 소집되었지만, 그는 그 와중에 황제와 공의회 참석자들을 파문한다는 내용의 서신을 보내고, 새로 선출된 교황 레오 8세에게도 파문을 선언했습니다.

이제부터가 기이하고 다소 코믹한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요한 12세의 귀환, 복수, 그리고 죽음

요한 12세: 음탕하고 폭력적인 젊은 교황

질투하는 남편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지는 교황

새 교황 선출 과정에서 배제된 데 분노한 로마 시민들은 제국군을 향해 돌진했고, 오토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몇 주 후 황제가 전쟁을 위해 떠났고, 바로 그때 새 교황에 대한 민심의 반발을 틈타 요한은 로마로 돌아왔고, 레오 8세는 도망쳤습니다.

웃음이 나오는 대목은, 로마 시민들이 그를 활짝 안아들며 환영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시민들은 그의 방종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겠죠.

이어 요한의 복수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공의회에서 자신을 비방했던 이들을 모조리 재판에 넘기고, 끔찍한 참형에 처했습니다.

서기 964년, 로마 귀환 불과 몇 달 후인 5월 14일, 교황 요한 12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마도 그의 정부 중 한 명의 남편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창밖으로 던져져 죽었다고 합니다. 스물일곱 살에 지상의 삶을 마감한 그의 영혼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단, 분명 성인들의 무리에는 속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 청년은 교회를 '카라카스 최악의 술집'으로 변모시켜 버린 셈입니다. (글: 마우로 나폴리엘로 / 사진 출처: festivaldelmedioevo.it, ilmessaggero.it, fattiperlastoria.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