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죽음이 도사린 바르샤바 게토,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을까

갓 태어난 신생아와 젖먹이들이 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던 바르샤바 게토. 그런데도 새 생명은 끊임없이 태어났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갇힌 삶을 살아가던 부모들은 대체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을까요? 인간은 왜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그토록 강렬하게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걸까요?

기자(Giza)는 자신에게 "저와 이야기해 보라"고 권했던 사람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낯선 사람인 저를 향해 던진 진심 어린 포옹 속에서 곧 깨달았습니다. 몇 분 만에 그녀의 얼굴에서 가득했던 긴장이 걷히고 몸이 느슨하게 풀렸습니다. 눈앞에는 애잔하고 다정한 표정, 조화롭고 편안한 몸짓을 지닌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기자는 따뜻한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며 자신의 뿌리와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거꾸로 된 삶

그녀는 1940년 11월 7일, 바르샤바 게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가 태어날 당시 어머니 에드워다(결혼 전 성은 겔브트룩크)와 아버지 헨리크 알터바인은 매우 젊었습니다. 두 사람이 원래 이곳 바르샤바에 살고 있었는지, 아니면 나치가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 II-비르케나우, 트레블링카, 마이다네크, 소비보르, 헤움노 등 절멸 수용소로 이송하기 전 격리시키면서 이곳으로 옮겨진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기자가 부모님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비로소 그들이 얼마나 젊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 에드워다는 소녀 같은 얼굴에 동그란 볼살, 어린아이 같은 눈매, 젊고 감각적인 입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가운데를 가른 길고 새카만 머리는 한 갈래로 묶어 올렸고, 가느다란 목에는 짙은 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교양 있고 우아한 인물이었지만, 사진이 찍히던 그 시점에는 곧 닥칠 끔찍한 운명을 암시하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죽음이 도사린 바르샤바 게토,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을까

바르샤바 게토의 아이들

세련된 체크무늬 셔츠에 짙은 색 넥타이를 맨 헨리크는 높은 눈썹 아래로 카메라를 빈틈없이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곱슬머리에 활짝 핀 넓은 얼굴의 총명한 청년이라는 인상이었습니다.

젊은 부부에게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헨리크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크리스털 제품을 수입하는 사업을 했습니다. 재능 있는 사업가답게 장사는 순조로웠고, 가족의 미래도 환해 보였습니다. 형편은 갈수록 나아졌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모든 것이 변하고 말았습니다. 비록 여러 징후가 이를 예고하고 있긴 했지만요.

"우리 삶은 한순간에 거꾸로 뒤집혔습니다."라고 기자는 단언하듯 말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영화

야드 바솀(Yad Vashem) 기록에 따르면, 바르샤바 게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가장 큰 게토였습니다. 게토가 차지한 면적은 도시 전체의 2.4%에 불과했고, 기자가 태어난 1940년 11월에 마침내 완전히 봉쇄되었습니다.

그곳에는 도시 주민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40만 명이 뒤섞여 갇혀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국가 동부의 다른 도시들에서 끌려온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부 세계와 자신들을 가로막는 벽을 직접 쌓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역은 목책 다리로 이어진 '대형 게토'와 '소형 게토', 두 개의 폐쇄 구역으로 나뉘었습니다. 흔들리는 다리를 건너는 동안 사람들은 게토 밖 도시의 일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게토 안에 갇힌 이들은 식량과 약품을 빼앗기고, 노역에 동원되며, 테러에 시달리고 박해와 고문을 겪으면서도 그저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도사린 바르샤바 게토,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을까

이 글은 다비드 세라노 블랑케르의 책 『캐리어를 든 소녀』(벨로나 출판) 발췌입니다.

기자는 참담한 조건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나치는 선전 영화로 독일인들을 기만했습니다. 영화 속에는 배설물이 고인 도랑 옆에 야윈 시신이 널려 있는데도 무심코 지나치는, 정 없이 태평한 게토 주민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동시에 사치스러운 유대인들이 화려한 파티를 벌이는 동안 가난한 이들은 구걸하거나 거리에서 죽어간다는 장면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조작된 이미지 앞에서 서방 세계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에 빠졌습니다.

수년이 흘러서야 이스라엘의 다큐멘터리 감독 옐 헤르손스키(Yael Hersonski)의 뛰어난 작품 『완성되지 못한 영화(A Film Unfinished)』를 통해 우리는 경악하면서도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밝고 즐거워 보이던 장면들은 모두 연출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배우를 동원하고 감독이 지휘하며 세트까지 준비된, 철저히 각본화된 영화였던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강력한 나치 선전 선동 기계에 부역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적에 맞서는 방식

히틀러는 유대인을 최대의 적으로 규정했고, 그들을 몰살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폴란드의 유대인들은 수십 년간 반유대주의에 시달려 왔습니다. 잔혹한 독일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전에는 소련에 의해 박해받기도 했습니다. 에드워다와 헨리크 같은 젊은이들은 게토에 갇힌 다른 유대인들과 운명을 함께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훨씬 넘어선, 비좁은 공속에 갇혀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감옥 같은 조건, 극심한 과밀, 전염병, 도처에 도사린 죽음 속에서도 게토 주민들은 살아남으려 애썼습니다. 문화 행사가 열렸고, 예술가와 창작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비극을 망설임 없이 작품에 담았습니다. 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역사학자 에마누엘 링겔블룸이 주도한 비밀 문서 아카이브 '오네그 샤바트'가 만들어졌으며, 연극이 공연되고 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비밀 청년 조직들이 결성되었습니다. 삶은 계속되어야 했기에, 사람들은 그것을 이어갈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죽음이 도사린 바르샤바 게토, 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을까

게토 주민들은 평범한 일상의 겉모습을 유지하려 애썼습니다. 울타리 안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게토에서 이루어진 결정 가운데 저에게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단연 '아이를 낳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학생들과의 대화에서 이 주제는 자주 다시 등장합니다. 지옥에서의 출산 욕구라고? 특히 이미 부모가 된 사람이라면, 이토록 끔찍한 조건 속에서 아이를 세상에 데려오기로 한 결정을 무모하고 잔혹하며, 심지어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기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는 게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1941년 시작되어 약 900일간 이어진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도, 그리고 더 최근에는 1992~1995년 발칸 전쟁 중 포위된 사라예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능한 한 많은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함으로써 세대의 계보를 잇고, 그것으로 적에 맞서며 미래를 건설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기자는 태어난 것입니다.

출처

이 글은 다비드 세라노 블랑케르(David Serrano Blanquer)의 책 『캐리어를 든 소녀(Little Girl with a Suitcase)』(벨로나/Bellona 출판)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