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사후 이야기: 400년을 떠도는 유해의 놀라운 여정

바야돌리드에서 시작된 첫 번째 잠자리

1492년 신대륙 항해로 역사를 바꾼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506년 5월 20일, 스페인 바야돌리드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시신은 처음에 바야돌리드 시내의 수도원에 안장되며 첫 번째 안식처를 찾았습니다.

세비야로의 이장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유해는 세비야의 산타 마리아 데 라스 쿠에바스 수도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후 1542년에는 아들 디에고 콜럼버스의 뜻에 따라 유해가 다시 발굴되었고, 대서양을 건너 히스파니올라 섬의 산토도밍고 대성당으로 이장되었습니다. 탐험가였던 아버지의 유해가 새로운 식민지의 중심지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아바나를 거친 두 번째 횡단

1795년, 스페인이 히스파니올라 섬을 프랑스에 할양하게 되면서 상황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콜럼버스의 유해가 적국의 손에 남는 것을 꺼린 스페인은 그의 관을 다시 배에 실어 쿠바 아바나로 옮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콜럼버스의 유해는 살아생전 항해했던 바다를, 죽은 뒤에도 두 번이나 건너게 된 셈입니다.

세비야 대성당, 최종 안식처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쿠바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그의 유해는 다시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콜럼버스의 관은 세비야 대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조각가 아르투로 멜리다(Arturo Melída)가 설계한 이 웅장한 무덤은 '콜럼버스 영묘'라 불리며, 카스티야, 레온, 아라곤, 나바라 네 왕국을 상징하는 귀족상들이 관을 어깨에 들어 올린 듯한 인상적인 구조로 유명합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흥미롭게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미니카공화국의 산토도밍고에서는 1877년 대성당 내부에서 발견된 유해가 진짜 콜럼버스의 것이며, 1795년에 옮겨진 것은 아들의 유해였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DNA 분석 등 과학적 검증이 이루어졌음에도 두 도시 모두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각자 자신이 탐험가의 최종 안식처라고 믿고 있습니다. 죽은 지 500년이 넘은 지금도 콜럼버스는 그다지 평온하지 못한 사후 세계를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