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이르마 그레제(Irma Grese): 아우슈비츠의 '아름다운 야수'로 불린 가학적 여성 감독관

역사에 남은 '아름다운 야수'

이르마 그레제(Irma Grese)는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에서 '아름다운 야수'라는 악명 높은 별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극심한 사디즘 성향을 지녔던 그녀는 수많은 여성 수용자들을 고통 속에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그들의 비참한 고통은 그녀의 비정상적인 욕망을 채우는 양분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모든 일은 그녀가 스물두 살이 되기 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어린 시절과 가정 환경

1923년 10월, 이르마는 독일 브레헨(Wrechen)의 가난한 농촌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네 명의 형제자매가 있었으며, 친척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녀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소심하고 겁 많은 소녀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성격 탓에 학교에서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섯 남매의 어린 시절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이르마가 열두 살이 되던 해, 그녀의 어머니는 염산을 마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남편의 외도 의혹이 극단적 선택의 배경이 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머니를 잃은 충격은 이르마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고, 또래들의 따돌림까지 더해지면서 그녀는 열네 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이르마 그레제(Irma Grese): 아우슈비츠의  아름다운 야수 로 불린 가학적 여성 감독관

독립 생활과 좌절된 꿈

이르마는 퓌르스텐베르크(Fürstenberg)에서 독립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우유 판매장과 상점에서 일한 뒤, 호엔리헨(Hohenlychen)에서 무장친위대(SS) 군인들을 돌보는 간호 보조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직업에 큰 만족감을 느꼈고, 정식 간호사가 되기 위해 교육을 이어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간호사 시험에 여러 차례 응시했음에도 합격하지 못했고, 결국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녀는 새로운 직업을 찾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사람을 돕는 것과는 정반대의 길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아름다운 야수'

이르마가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던 시기는 SS가 신규 인력을 필요로 하던 때와 겹쳤습니다. 그녀는 이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매료는 십대 시절 '독일 여성 동맹(BDM)'에 가입하면서 시작되었고, 열아홉 살에 강제수용소 여성 감독관인 'SS-아우프제헤린(SS-Aufseherin)' 훈련에 자원하면서 완전히 꽃피웠습니다.

그녀는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에서 수습 과정을 마친 뒤, 1943년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로 발령받았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빠르게 '아름다운 야수'라는 악명 높은 별명을 얻게 됩니다. 스무 살의 나이에 그녀는 눈부신 속도로 승진을 거듭했고, 1943년 말에는 이미 마리아 만델(Maria Mandel) 밑에서 수석 감독관 자리에 올라 있었습니다.

이르마 그레제(Irma Grese): 아우슈비츠의  아름다운 야수 로 불린 가학적 여성 감독관

이르마는 비범한 성적 욕망과 사디즘 성향으로 구별되었습니다. 천사와 같은 미모를 지닌 금발 미녀였던 그녀는 유행하는 헤어스타일과 푸른 눈동자로 남녀 모두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녀는 반짝반짝 닦은 구두와 자신의 체형을 돋보이게 하는 맞춤 제복을 입고 수용소를 돌아다녔습니다. 덕분에 그녀는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 요제프 크라머(Josef Kramer), 그리고 상관인 마리아 만델 등과 뜨거운 관계를 여러 차례 이어갔습니다.

비정상적인 가학 욕망

그녀는 굳건한 개를 여성 수용자들에게 풀어 물어뜯게 하는 것과 강철 심장이 박힌 채찍으로 고문하는 데 특별한 쾌락을 느꼈습니다. 가장 흔히 여성 수용자들의 가슴 부위를 후려쳤으며, 생긴 상처는 수용소의 오염된 환경 탓에 곧잘 감염되곤 했습니다.

그녀는 수용자들을 구타했고, 지치도록 혹독한 운동과 처벌을 강요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피해자가 힘이 다해 쓰러질 때까지 머리 위로 무거운 돌을 들고 있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잔혹함은 수용소 전체에 공포로 번졌고, 그녀는 종종 가장 연약한 존재들, 즉 어린 소녀들이나 지치고 병든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았습니다.

이르마는 의무 검진과 치료 과정에서 자신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지켜보는 것을 즐겼으며, 피해자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광경을 보며 쾌감을 느꼈습니다. 바로 이런 순간들이 그녀의 비정상적인 욕망을 자극했고, 그녀는 이를 수용소 직원들과 자신에게 예속된 여성들과의 수많은 성적 접촉으로 분출했습니다.

이르마 그레제(Irma Grese): 아우슈비츠의  아름다운 야수 로 불린 가학적 여성 감독관

수용소 내 여성 수용자와의 성관계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위반 시 사형을 포함한 무거운 처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르마는 부하들에게 정기적으로 자신과 성관계를 갖도록 강요했으며, 많은 어린 소녀들에게 이러한 폭력 장면을 지켜보도록 명령했습니다. 성적으로 학대당한 수용자들은 대개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것은 학대 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하거나, 아니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스실에서였습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에서 그녀는 진정한 괴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녀의 행적으로 인해 하루 최대 30명의 수용자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야수의 최후

1945년 1월, 붉은 군대가 다가오자 이르마는 아우슈비츠를 떠나 죽음의 행군을 감독하던 SS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먼저 라벤스브뤼크로 옮겨졌다가 이후 베르겐-벨젠(Bergen-Belsen) 수용소로 이동했고, 그곳에서 결국 영국군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체포된 나치 관계자들은 뤼네부르크(Lüneburg)로 호송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르마는 자신에 대한 모든 혐의를 주저 없이 부인했습니다. 그녀의 미모는 재판에 참석한 관계자들과 기자들을 놀라게 했고,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낳았습니다. 전직 수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르마는 이미 수용소 시절부터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고 전후에는 영화 스타가 되겠다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운명은 그녀에게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르마 그레제(Irma Grese): 아우슈비츠의  아름다운 야수 로 불린 가학적 여성 감독관

미모는 그녀를 유죄 판결로부터 구원해 주지 못했습니다. 1945년 11월 17일 사형 선고가 내려졌고, 그녀는 교수형에 처해야 했습니다. 판결문을 접한 스물두 살의 그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공판 기간 내내 흠잡을 데 없는 외모를 유지하는 데 집착하던 그녀는 심리가 끝난 뒤에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자신을 돌보는 것조차 멈춰버렸습니다.

형집행은 1945년 12월 13일에 이루어졌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처형 당일 낙하판 위에 서 있던 그녀는 집행인에게 "서둘러!"(Hurry up!)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 한마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