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르 시대의 건축: 힌두-이슬람 문화의 융합
악바르는 약 50년간 인도를 통치하며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무굴 술탄국의 국고를 충실히 했다. 이에 힘입어 그는 인도 전역의 여러 도시에 대규모 건축 사업을 벌였다. 악바르의 통치기는 정치,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힌두-이슬람 문화가 융합되고 조화를 이룬 시기였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건축 분야에서도 새로운 융합의 장을 열었다. 악바르가 세운 건축물에는 이란(페르시아)과 인도의 요소가 공존하지만, 전반적으로 인도적 요소가 우세하다. 일부 학자들은 무굴 미술의 진정한 시작을 악바르 시기로 보기도 한다.
동시대 역학자 아불 파즐은 악바르에 대해 "황제는 아름다운 건물을 구상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의 형상을 돌과 모르타르에 부여한다."고 기록했다. 악바르는 당대 건축 양식의 미묘함을 꿰뚫어 보며 장인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고, 그 결과 악바르 시대에 성립된 신양식은 힌두와 이슬람 양식의 진정한 종합(Synthesis)이었다.
악바르 건축 양식의 주요 특징
- 재료: 주로 붉은 사암(Red Sandstone)을 사용했으며, 곳곳에 백대리석을 병용했다.
- 아치 및 지붕 양식: 메흐라비(Mehrabi, 아치형)와 펄린(Purlin, 들보식) 양식이 거의 동등한 비율로 사용되었다.
- 돔(Dome) 구조: 초기에는 로디 양식을 따라 속이 빈 단일 돔을 만들었으나, 기술적으로는 이중 돔(Double Dome)이 아니었다.
- 기둥(Pillar) 장식: 기둥의 전면은 다면체이며, 상단에는 브라켓(Bracket)이나 렛지(Ledge)가 달려 있다.
- 장식성: 건물은 조각이나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으며, 밝은 색채로 채색되었다.
악바르 건축의 두 발전 단계
악바르 건축의 전개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 1단계 (파테푸르 시크리 이전): 아그라 요새, 알라하바드 요새, 라호르 요새 등의 건축이 이에 속한다.
- 2단계 (파테푸르 시크리 건설): 1571년부터 1580년까지 신도시 파테푸르 시크리를 건설하며 절정에 달했다.
델리의 주요 건축물
후마윤 묘 (Humayun's Tomb, 1562년 착공)
악바르 시기 델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이다. 인도 최초로 차르바그(Charbagh, 4분 정원) 양식이 도입되었으며, 이는 훗날 타지마할 정원의 원형이 되었다. 당대 역사가 압둘 카디르 바다유니에 따르면, 주 건축가는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출신의 미라크 미르자 기야스였다. 그가 사망한 후 아들 사이드 무하마드 이븐 미라크 기야수딘이 공사를 마무리해 1571년 주 건물이 완공되었다. 이는 무굴 제국 최초로 붉은 사암을 대규모로 사용한 건물이다.
이 묘역에는 후마윤 황제와 왕족들(하미다 바노 베굼, 다라 시코, 자한다르 샤, 파루크시야르, 라피 우드 다라자트, 라피 우드 둘라, 알람기르 2세 등)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 이 양식은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랑 묘에서 유래했으며, 이후 인도 무굴 묘 건축의 원형이 되어 타지마할에서 정점을 찍는다.
왕실 이발사 묘 (Nai-ka-Gumbad, 1590년)
후마윤 묘 남동쪽에 위치한다. 높은 기단 위에 세워진 정방형 건물로, 7계단을 올라 출입한다. 단일 실내에 이중 돔을 올린 구조이며, 내부의 두 무덤에는 꾸란 구절이 새겨져 있다. 한 무덤에는 '999'라는 숫자가 있어 히즈라 999년(서기 1590-91년)을 가리킨다.
불리마 묘 (Buhlima's Tomb)
돔, 미나레트, 바스티온, 이완, 아치 등 전형적인 페르시아 건축 요소가 전혀 없는, 직사각형의 소박한 가옥 형태다. 현지에서 나는 석영암(Quartzite)으로 지어졌다.
아랍 사라이 (Arab Sarai)
불리마 묘 인근에 있으며, 후마윤의 미망인 하미다 베굼이 아라비아에서 온 300명의 장인을 위해 지은 여관이다. 거대한 이완 형태의 정문과 두 개의 큰 아치가 특징이며, 내부는 두 부분으로 나뉜 볼트 천장 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메헨디 바자르'라고도 불리며, 자한기르의 수석 궁녀 미하르 바누가 지었다는 설도 있다.
아프사르왈라 묘와 모스크 (Afsarwala Tomb and Mosque)
아랍 사라이 근처 기단 위에 나란히 서 있으며, 둘 다 현지 석영암으로 지어지고 외벽은 붉은 사암과 백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내부는 페르시아 양식의 소박한 구조다. 모스크의 주 예배당은 '스리 베이(Three Bay)' 구조로, 중앙 베이를 중심으로 아치가 있고 그 위에 돔이 얹혀 있다. 돔 내부에는 벽화 패널이 있으며, 모스크의 '트리하라 이완(Triple Iwan)'은 페르시아 양식이다. 묘 내부는 단일 실로 대리석 관이 있으며, 꾸란 974절(히즈라 974년 추정)이 적혀 있다. 묘는 팔각형 평면에 이중 돔을 가졌고, 네 면에 아치형 출입구가 있다. 돔 위에는 뒤집힌 연꽃 장식과 망갈 칼라시(Mangal Kalash)가 있는데, 이는 악바르 건축에서 드문 사례다.
아담 칸(아담 칸) 묘
악바르의 유모 마함 앙가의 아들 아담 칸을 위해 남쪽 델리 랄코트 성벽 위에 지었다. 팔각형 건물로, 15-16세기 사이드-로디 왕조 양식의 돔을 가졌다. 주변에 아치형 베란다가 둘러져 있고, 각 베란다마다 세 개의 문이 있다.
아그라의 주요 건축물
아그라 요새 (Agra Fort)
원래 힌두교 요새였으나 로디 왕조가 증축했고, 바부르가 계단 우물을 팠다. 악바르, 자한기르, 샤 자한이 궁전을 짓고 보수했다. 아불 파즐은 "이 요새는 벽돌로 지어 '바달가르'라 불렸으며, 벵골과 구자라트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약 500채가 있었다."고 전한다.
악바르는 폐허가 된 요새를 돌라푸르 인근 카라울리에서 가져온 붉은 사암으로 전면 개축했다. 8년간 4,000명의 장인이 투입되어 1573년 완공되었으며, 악바르가 가족과 함께 거처했다. 정문인 델리 다와자(Delhi Darwaza, 1566년)와 자한기르 마할은 악바르 시기 건축이다. 델리 다와자는 초기 악바르 양식의 특징(조각된 붉은 사암, 팔각형 경사 벽, 아치형 지붕, 파빌리온, 카운굴, 백석 장식)을 잘 보여준다. 반면 악바르 마할은 자한기르 마할보다 예술성이 떨어지고 벵골 양식의 첨탑이 있으며 현재는 폐호다.
알라하바드(프라야그라즈) 요새
원래 힌두 왕이 지었으나 악바르가 재건했다. 강물의 침식으로 지형이 불안정해 불규칙한 평면도에 맞춰 요새를 지은 것이 최대 특징이다. 내부에는 자한기르 마할, 세 개의 큰 회랑, 높은 미나레트 등이 있었으나 무굴 시대를 거치며 많이 변형되었다.
아즈메르 요새
악바르는 산성을 선호하지 않아 아그라, 라호르, 알라하바드, 파테푸르 시크리 같은 평지에 대정원을 조성하며 거주했다. 이에 아즈메르의 옛 힌두 산성을 이슬람 양식으로 개조해 궁전을 지었다. 파테푸르 시크리 궁전을 축소 모방한 거대한 사각형 구조로, 네 모서리에 팔각 미나레트, 정면에 거대한 회의당, 서쪽에 아름다운 문과 중앙 건물이 있다. 정문 높이는 84피트, 너비 43피트에 달한다.
파테푸르 시크리 (Fatehpur Sikri) 건축군
아그라에서 남서쪽 23마일, 경사진 언덕에 자리한 신도시다. 세 면은 성벽, 한 면은 인공 호수로 둘러싸여 있다. 1571년 착공해 1580년 완공되었다. 건물군은 세 범주로 나뉜다.
- 종교 건축: 자마 마스지드, 셰이크 살림 치슈티 다르가, 불란드 다와자, 이바다트카나(중앙 홀/디와네 망고) 등
- 주거 건축: 크와브가(침전), 조다 바이 마할, 비르발 마할(제나나 마할), 비비 마리암 마할, 투르키 술타나 마할, 아불 파즐과 파이지의 궁전 등
- 관청 건축: 보물창고, 디와네 망고(공개 알현실), 디와네 카스(비공개 알현실/카스 마할) 등
논쟁: 파테푸르 시크리 양식은 '국가 건축 양식'인가?
파테푸르 시크리의 모든 건물은 힌두-이슬람 혼합 양식이며, 힌두 건축의 비중이 높다. 디와네 카스의 기둥, 판치마할과 조다 바이 궁전의 종과 사슬 장식, 마리암 궁전의 동물·조각상 등은 힌두·자이나 사양을 모방한 것이다.
대리석과 사암으로 지어진 불란드 다와자는 건축적 걸작으로 꼽힌다. 아시르딜랄 스리바스타바 박사는 "파테푸르 시크리 양식은 고대 인도 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석재에 구현한 악바르의 통합 정책을 보여준다."고 평하며, 이 조화된 양식을 '국가 건축 양식(National Architectural Style)'이라 명명했다. 그는 이 양식이 전국과 라자스탄의 라자푸트 왕들(아즈메르, 비카네르, 조드푸르, 암베르, 오르차, 다티아 궁전) 및 힌두 사원 건축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퍼시 브라운 역시 라자푸트 건축이 무굴의 아치, 유리 모자이크, 다리카나, 회반죽 회화 등을 수용했음을 지적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파테푸르 시크리 궁전들의 상당수는 원래 시카르와르 라자푸트들이 지은 것을 악바르가 외관만 바꾼 것이라는 주장이다. 영국인 역학자·고고학자들이 이를 오해해 '힌두-이슬람 혼합 양식'으로 규정했고, 후대 인도 학자들도 현장 검증 없이 이를 답습했다는 비판이다. 또한 이 양식이 전국적으로 통용되거나 후대에 계승된 바 없으므로 '국가 건축 양식'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