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골리아드 학살의 희생자는 누구였나? – 1836년 텍사스 혁명의 비극

1836년 3월, 텍사스 혁명이 한창이던 시절 멕시코군은 텍사스주 골리아드(Goliad)에서 수백 명의 텍사스 포로를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은 '골리아드 학살(Goliad Massacre)'로 불리며, 알라모 함락 직후 벌어져 텍사스 독립운동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골리아드 학살, 어떻게 벌어졌나?

제임스 패닌(James W. Fannin Jr.) 대령이 지휘하는 텍사스군은 1836년 3월 19일 콜레토 크릭 전투에서 호세 데 우레아(José de Urrea) 장군이 이끄는 멕시코군에 패배해 항복했습니다. 포로로 잡힌 병사들은 골리아드의 프레시디오 라 바히아(Presidio La Bahía)에 수감되었지만, 멕시코의 산타 안나(Santa Anna) 대통령은 포로 전원의 즉결 처형을 명령했습니다.

결국 1836년 3월 27일, 팜 선데이(Palm Sunday) 아침 약 342명의 텍사스 포로가 요새 밖으로 끌려나가 총살당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항복한 군인들이 집단 학살당한 이 사건은 당시 국제법과 전쟁 관행에도 어긋나는 만행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대표적인 희생자들

제임스 패닌 (James W. Fannin Jr.)

콜레토 크릭 전투에서 텍사스군을 지휘한 사령관입니다. 부상을 입고 항복한 뒤 골리아드로 호송되었고, 학살 당일 가장 마지막에 처형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오늘날 텍사스에는 그의 이름을 딴 패닌 카운티(Fannin County)가 남아 있습니다.

윌리엄 워드 (William Ward)

텍사스 혁명기 조지아 대대(Georgia Battalion)를 지휘한 중령입니다. 리퓨지오 전투 이후 포로가 되어 골리아드로 이송되었으며, 학살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패닌 휘하의 장교와 병사 다수가 희생되었습니다. 미국 각지에서 몰려든 자원병부터 유럽 출신 이민자까지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들의 죽음은 텍사스뿐 아니라 미국 전역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생존자들과 '골리아드를 기억하라'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극소수였습니다. 약 20~30명이 도주에 성했거나 의사, 통역사 등 특수한 신분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며, 로버트 행콕 헌터(Robert Hancock Hunter)와 존 J. 린(John J. Linn) 같은 생존자들은 회고록과 증언을 통해 이 사건의 실체를 후대에 전했습니다.

'알라모를 기억하라(Remember the Alamo)'와 함께 외쳐진 '골리아드를 기억하라(Remember Goliad)'는 텍사스군의 결의를 상징하는 구호가 되었고, 같은 해 4월 샌재신토 전투에서 산타 안나를 격파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