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년 세일럼 마녀재판이 일어나기 전, 뉴잉글랜드 식민지 사회에서 아이들은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수행하는 존재였습니다. 다만 당시 어린이의 위상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어린이'라는 개념이나 아동 권리와는 매우 달랐다는 점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1. 가사 노동과 농장 일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 농사일,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정 내 노동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상적인 작업을 돕는 것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의무로 여겨졌습니다.
2. 교육
오늘날처럼 보편적인 학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지만, 아이들은 집이나 이른바 '데임 스쿨(dame school)'이라 불리던 초등 형태의 학교에서 기초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학업보다는 실생활에 필요한 실용적 기술을 익히는 것이 교육의 주된 목표였습니다.
3. 종교 교육
아이들은 엄격한 종교 교육과 도덕 원칙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는 아이들의 신앙과 행동 규범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4. 도덕 훈련
부모와 어른, 그리고 권위자에게 복종하는 태도는 필수적인 덕목이었습니다. 올곧은 인품과 도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 높이 평가되었으며, 이를 어기면 엄한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5. 경제적 기여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견습공으로 들어가거나 유급 노동에 종사하며 가계 소득에 보탤 수 있었습니다. 이는 가족 경제에서 아이들이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음을 보여줍니다.
6. 법정에서의 증인 역할
흥미롭게도 아이들은 법적 사건에서 증인으로 나설 수 있었고, 마녀 관련 사건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세일럼 마녀재판에서는 어린 소녀들의 증언이 재판의 중요한 근거로 받아들여지면서 사건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7. 마녀로 고발당하는 아이들
세일럼 마녀재판을 비롯한 유사한 사건들에서는 아이들 스스로가 마녀 혐의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심문과 박해를 겪어야 할 수도 있었습니다.
8. 정서적 지지자
아이들은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동반자이자 정서적인 위안이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질병, 흉년, 분쟁처럼 힘든 시기에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소중한 감정적 지지의 원천이었습니다.
마무리: 보호받지 못한 '어린 시절'
이처럼 다양한 역할과 책임을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아이들은 여전히 어른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겨졌으며 그들의 관심사나 감정은 대부분 무시되곤 했습니다. 어린 시절을 하나의 독립적이고 보호받아야 할 발달 단계로 인식하는 개념은 훗날 역사적으로 비로소 자리 잡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