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조지 3세는 존 로크의 사회계약을 어떻게 깨뜨렸을까?

사회계약 개념과 조지 3세

통치자와 백성 사이에 맺어져 있다는 '사회계약(社會契約)' 개념은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존 로크, 장자크 루소 등 사상가들에 의해 널리 논의되었습니다. 다만 이 개념이 특별히 영국의 조지 3세 국왕과 결부되어 다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사회계약론은 특정 군주 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이론이 아니라, 통치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위해 널리 활용된 보편적인 사상적 틀이었기 때문입니다.

입헌군주로서의 조지 3세

조지 3세(1738~1820, 재위 1760~1820)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전제군주가 아니라 입헌군주였습니다.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영국은 의회와 법치를 중심으로 하는 헌정 체제를 확립해 왔으며, 국왕의 권한은 법률과 제도에 의해 상당 부분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조지 3세의 통치 행위 역시 18세기 후반 영국 정치 체제의 법률과 제도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내각과 의회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강행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고, 실제로 여러 차례 내각 구성 과정에서 정치적 제약을 겪기도 했습니다.

사회계약 '파기' 논란의 배경: 미국 독립혁명

조지 3세가 사회계약을 깨뜨린 존재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맥락은 미국 독립혁명입니다. 북미 식민지 주민들은 인지세법(1765), 타운젠드법(1767) 등 일련의 과세 정책에 대해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를 내걸며 자신들의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1776년 발표된 미국 독립선언서는 백성의 동의에 기초한 정부와, 백성이 정부를 교체할 수 있는 권리를 언급하면서 조지 3세가 이러한 원칙을 저버렸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전형적으로 존 로크의 사회계약론에 뿌리를 둔 논리였습니다.

요컨대 조지 3세가 개인적으로 사회계약이라는 이론을 세우거나 파기한 것은 아니지만, 식민지 민중의 눈에는 그의 정책이 계약 정신을 위반한 것으로 비쳤고, 이것이 독립 운동의 강력한 명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