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미노 효과를 굳게 믿는다. 아주 사소한 일 하나가 역사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일 리 없다. 바로 이런 믿음 때문에, 누군가 과거로 돌아가 시간을 바꾼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 보는 드라마와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왜 갑자기 시간 여행 이야기를 꺼냈는지 궁금할 수 있다. 직접 시간을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덕분에 흥미로운 질문 하나를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 최초의 식민지가 지금과 달랐다면, 오늘날의 역사도 달라졌을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미국은 당시 영국의 일부였던 13개 식민지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미국 역사의 시작에는 하나의 거대한 미스터리가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미국 최초의 식민지는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고 배운다. 하지만 제임스타운보다 앞서, 영국은 로어노크(Roanoke)라는 식민지 건설에 실패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실패의 끝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자리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지화

오랫동안 학교의 사회 수업에서 식민지 시대는 빠지지 않는 핵심 주제였다. 식민지들이야말로 오늘날 미국이 된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땅을 손에 넣고 싶어 하는 것은 영국만이 아니었다. 여러 유럽 열강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신대륙의 땅을 차지하려 했다.
식민지 건설과 영유권 분쟁
아메리카 대륙이 가치 있는 땅이라고 판단한 나라는 영국만이 아니었다.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까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 대륙은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새로운 영토이자 기회의 땅이었다. 특히 현재 미국 동부 해안, 곧 13개 식민지가 자리한 지역은 조건이 매우 유리했다. 무역이 국가의 생명줄이던 시절, 이곳은 좋은 무역항을 건설하기에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대한 재조명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에 대한 평가는 내가 처음 배웠던 시절과 비교해 많이 달라졌다. 요즘은 콜럼버스의 날 대신 원주민의 날(Indigenous Peoples' Day)을 기념하는데, 이는 충분히 타당한 변화다. 몇 세기 동안 신대륙의 발견자로 추켜져 왔지만, 실제로는 원주민들이 이미 그 땅에 살며 발견하고 개척해 온 상태였다는 점을 역사가 제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콜럼버스는 세계에 많은 것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 대가는 얼마나 컸던가? 원주민들은 유럽인만큼 기술적으로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들이 살아온 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교류가 가능했음에도,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에게서 땅에 관한 지식을 배워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데 집중했다. 그가 돌려준 것은 원주민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물건들이었고, 그 물건들과 함께 들어온 병균은 면역력이 없던 원주민 사회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제임스타운 식민지
제임스타운 식민지는 로어노크의 실패 이후 세워졌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먼저 짚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다. 1607년, 잉글랜드인들은 지금의 버지니아 지역에 정착지를 건설했다. 이것이 영국의 첫 영구 정착지였다.
로어노크의 실패는 새로운 정착민들에게 귀중한 교훈이 되었다. 다음 식민지가 같은 운명을 맞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셈이다. 정착민들은 도착하자마자 세 그룹으로 나뉘었다. 건설 담당, 농경 담당, 탐험 담당. 세 그룹은 저마다의 역할을 맡아 정착지를 지탱했다.

식민지의 삶, 그 험난한 현실
제임스타운의 출발은 매우 고단했다. 배의 선장이 더 많은 물자를 구하러 잉글랜드로 떠나자마자 정착민들은 병들기 시작했다. 마실 수 없는 물을 억지로 마셨고, 먹을 것은 부족했으며, 수많은 사람이 열병에 시달렸다.
위협은 질병만이 아니었다. 전쟁의 그림자도 드리워 있었다. 일부 원주민 부족들은 자신들의 땅에 정착민이 들어온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피바람이 불며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포우하탄(Powhatan)족은 굶주린 식민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많은 이들이 이 부족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착민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초기 정착민 중 생존자는 소수에 불과했고, 1608년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사람들이 보내져 식민지를 다시 채울 수 있었다.
존 스미스와 포커호ンタ스, 낭만화된 역사
디즈니는 존 스미스를 어느 정도 황자(王子)처럼 그려냈다. 하지만 스미스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며, 결코 왕자가 아니었다. 포커호ンタ스와의 사랑 이야기 역시 그녀가 겨우 10세 남짓의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착민들이 원주민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나 자기만의 판단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디즈니가 정착민과 원주민을 왕자와 공주로 묘사하며 낭만적인 로맨스를 얹은 것은 역사를 너무 멀리, 너무 예쁘게 치장한 일이었다.
실제 존 스미스는 식민지 통치 기구의 일원이었다.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스미스의 관심은 지위보다 생존에 있었다. 포우하탄족에 의해 처형 위기에 몰렸지만 포커호ンタ스가 그를 구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일부 학자들은 스미스가 이 사건을 과장했거나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당시 부족 쪽에는 기록이 없었고 현장에 있던 정착민은 스미스뿐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영원히 추측의 영역에 남을 수밖에 없다. 그 후 스미스는 식민지의 지휘를 맡았고,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그의 통치 아래 식민지는 큰 손실 없이 버텼고, 원주민들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있었다. 스미스 자신은 생존의 공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이것은 로어노크의 실패 이후 처음으로 성공한 식민지였다.
로어노크 식민지, 실패의 연속
식민지화 이전의 탐험
성공이 있으려면 반드시 실패가 선행되는 법이다. 사람은 무엇보다 실패에서 배우니까. 1524년, 피렌체 출신의 항해자 조반니 다 베라차노(Giovanni da Verrazzano)는 프랑스 국왕을 위해 북아메리카를 탐험하며 오늘날 노스캐롤라이나 아우터뱅크스(Outer Banks) 지역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이후 프랑스도 스페인도 이 지역을 더 깊이 탐험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수십 년이 지난 1584년, 잉글랜드가 비교적 개척되지 않은 북아메리카의 식민지화에 나섰다. 목표는 유럽 어느 나라도 아직 이루지 못한 '아메리카 영유권 선점'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확립하는 것이었다.
로어노크, 첫 번째 시도
1585년 대규모 정착민들이 건너왔지만, 이들은 상당한 고초를 겪다가 남은 식량이 얼마 되지 않아 잉글랜드로 되돌아갔다. 땅과 식민지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낯선 땅에 적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과였다.
신대륙을 잉글랜드의 영토로 만들고자 했던 인물은 월터 랠리(Walter Raleigh)였다. 잉글랜드로부터 허가를 받은 그는 함선 여러 척에 총 600명을 태워 보냈다. 그러나 항해 도중 함대는 흩어지고 말았고, 훗날 로어노크가 될 땅에 도착했을 때는 참전 경험 있는 군인 레인(Ralph Lane)의 지휘 아래 약 108명만이 남아 있었다.
레인은 인근 원주민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로어노크 섬을 떠나 잉글랜드로 돌아가 보고를 올렸다. 레인의 묘사에 따르면 그 땅은 조건이 좋아 보였고, 이에 힘입어 랠리는 식민지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또 다른 함대를 신대륙으로 파견했다.
마지막 로어노크 식민지
신대륙 최초의 식민지를 건설하려던 마지막 함대는 존 화이트(John White)가 이끌었다. 그는 식민지의 총독이 될 예정이었다. 정착민들은 원주민과의 충돌과 식량 부족 속에서도 버티려 애썼다. 1587년,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되었고 이번에는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미스터리가 될 운명이 아니었던 셈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존 화이트의 선택
존 화이트는 이 새로운 식민지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여성과 아이들을 포함한 사람들을 데려왔다. 총 113명이 항해에 동행했고, 화이트는 식지 않은 가족 일부도 함께 데려갔다. 가족이 함께 있다면 이 식민지를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주민들과의 긴장은 계속되었고, 물자는 빠르게 바닥났다. 상황을 짚어보면, 이 무리는 1587년 5월에 잉글랜드를 떠나 7월에 도착했는데, 해가 끝나기도 전에 보급품이 거의 다 떨어질 처지였다. 여성과 아이들을 데려온 것은 식민지가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지만, 함선 쪽에서는 추가 물자가 필요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화이트는 정착민들과 가족을 남겨두고 잉글랜드로 향했다. 귀환 항해는 순탄치 않았다. 해적과의 충돌까지 겹치면서 평소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렸다(물론 배로 이동하는 것은 원래 오래 걸리는 일이지만). 1590년에야 화이트는 마침내 돌아올 수 있었으나, 그곳에는 그가 떠났을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로어노크 식민지의 미스터리
로어노크 식민지가 건설된 지 3년 후,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총독 존 화이트가 잉글랜드의 지원과 함께 돌아왔을 때, 정착민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것이 미국 역사상 첫 번째 미스터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역사는 종종 미스터리 그 자체다. 1차 사료가 실재하는데도, 누군가는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만 믿는 법이니까. 그런데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 전체가 허공으로 증발할 수 있단 말인가? 화이트가 돌아왔을 때 본 것은 거의 '없음'이었다. 완전히 텅 빈, 사람이 사라진 땅. 거기에 남겨진 것은 나무에 새겨진 수수께끼의 메시지 하나뿐이었다. '크로(CRO)', 혹은 '크로토안(CROATOAN)'.
크로토안(Croatoan)
그렇다면 크로토안은 무엇인가?
나는 크로토안이라는 단어를 일종의 전투 함성처럼, 여러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근원은 사라진 로어노크 식민지에 있다. 수수께끼 같은 메시지에는 늘 강렬한 분위기가 따른다. 1590년 8월 18일, 그곳에는 '크로토안'이라는 단어만 남아 있었고, 또 다른 나무에는 '크로'가 새겨져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수 세기 동안 이 단어 앞에서 머리를 감싸 왔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살던 식민지가 어떻게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었을까?

화이트 자신은 사람들이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식민지를 다시 시작했다고 믿으면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이는 전혀 동떨어진 추측이 아니다. 존 화이트는 물자를 더 구해야 했고 귀환이 크게 늦어졌다. 정착민들은 뭔가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이주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실제로 화이트가 잉글랜드로 떠나기 전,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이주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었다. 그렇다면 왜 뚜렷한 단서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어떻게 이 일은 수백 년째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사라진 식민지, 드디어 발견되었나?
지난 10여 년간 사라진 식민지에 대한 보고가 여러 차례 있었다. 나는 어째서 이제야 이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동안 내 눈에 띄지 않았는지 궁금해졌다. 작가 스콧 도슨(Scott Dawson)은 이 사건을 다룬 책을 통해 이제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실제로 일어난 일은 원주민들이 정착민들을 받아들였고, 그들이 그곳에서 남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것이 가장 개연성 있는 설명이다.
일부 부족과 정착민들 사이의 관계가 험악했음에도, 다른 부족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 가뭄이 찾아와 사람들이 도움을 더욱 절실히 구했다는 기록도 읽은 적이 있다. 결정적인 증거는 부족하지만, 이는 언제나 매우 유력한 가능성으로 꼽혀 왔다. 어쩌면 정착민들이 원주민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 그들과 완전히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지만, 아마 우리는 결코 확실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 속의 로어노크
이 미스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크로토안은 잘 알려진 단어가 되었고, 언제나 로어노크 식민지와 함께 언급된다. 이야기 자체에서만 알려진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미디어에도 등장한다. 대표적인 예가 인기 드라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American Horror Story)'의 한 시즌으로, 로스트 콜로니가 중심 소재로 다뤄졌다.
그 시즌은 정말 흥미진진했다. 드라마 속의 드라마라는 독특한 구조를 놀라운 완성도로 소화해냈다. 함께 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시즌으로 꼽히곤 한다. 그러므로 로어노크 식민지에 대해 알아보고 싶거나 이 미스터리의 토끼굴에 빠져보고 싶다면,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질문
미국의 역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식민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지금도 놀랍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사람들마다 각자의 믿음이 있고, 어떤 이야기는 다른 것보다 훨씬 재미있다. 초자연적인 존재가 식민지를 지워버리고 메시지만 남겼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식민지 전체가 잃어버린 도시 아틀란티스처럼 되어, 버뮤다 삼각지대의 사람들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나의 상상일 뿐이다. 혹은 다음 누군가 위자(Ouija) 보드를 사용해 진실의 끝까지 파헤쳐볼지도 모르겠다. 확실한 답을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 있다.
앞으로도 사람들이 이 미스터리를 계속 들여다봤으면 한다. 답이 딱 혀끝에 걸린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작 결정적인 답은 없다. 나도 답을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이 작은 이야기라도 전해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