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0년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로 기록된 운든니 학살(Wounded Knee Massacre)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비극이 아니라, 수년간 쌓여 온 갈등이 마침내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다우스 법과 토지 상실
갈등의 뿌리는 1887년 다우스 법(Dawes Act)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법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공동으로 소유하던 토지를 포기하고 개별 할당지로 이주할 것을 강제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부족은 광범위한 빈곤과 무토지 상태에 빠졌고, 미국 정부에 대한 반감은 날로 깊어졌습니다.
고스트 댄스 운동의 확산
1890년 겨울, '고스트 댄스(Ghost Dance)'라 불리는 새로운 종교 운동이 라코타 수우(Lakota Sioux)족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고스트 댄스는 영적 부활과 들소(버팔로)의 귀환을 약속했으며, 이를 통해 백인 정착민이 도래하기 전의 라코타의 삶이 되돌려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 운동은 순식간에 널리 받아들여졌고, 곧 미국 정부 권위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군대 파견과 야영지 포위
커져 가는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라코타 보호구역에 군대를 파견했습니다. 병력은 라코타 사람들을 모아 보호구역으로 강제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같은 해 12월, 제7기병연대(7th Cavalry)는 운든니 크리크(Wounded Knee Creek)에 있던 대규모 라코타 야영지를 포위했습니다. 처음에는 항복을 주저했던 라코타 족은 짧은 충돌 끝에 무기를 내려놓기로 동의했습니다.
첫 발포와 학살의 시작
라코타 사람들이 무기를 내려놓는 도중 한 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첫 발을 누가 쐈는지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총성이 참극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제7기병연대 병사들은 라코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제히 사격을 개시해 수백 명을 학살했습니다. 당시 희생자는 약 250명에서 3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사에 남은 상처
운든니 학살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 중 하나로 남았으며, 미국 정부가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가한 잔혹한 대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