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 킹 암살범 제임스 얼 레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다
미국 인권 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를 암살한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가 1998년 4월 23일, 70세를 일기로 교도소 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죽음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사건 중 하나에 종지부를 찍은 순간이었습니다.
간암 투병 끝에 별세
레이는 테네시주 내슈빌에 있는 로이스 엠 드베리 스페셜 니즈 시설(Lois M. DeBerry Special Needs Facility)에서 99년형을 복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1997년 간암 진단을 받았으며, 이후 몇 달 동안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결국 교도소 내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킹 목사 살해 사건의 유일한 유죄 판결자
레이는 1968년 4월 4일 멤피스에서 일어난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유일한 인물입니다. 사건 발생 두 달여 만인 같은 해 6월, 그는 영국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체포되어 미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살인죄를 자백했고, 종신형에 해당하는 99년 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습니다.
자백 번복과 평생의 항소
그러나 레이는 형이 선고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백을 번복하고, 자신이 누명을 썼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1977년에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고, 그는 남은 평생을 형 집행 취소를 위한 소송에 바쳤지만 모든 항소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오늘날까지도 여러 추측과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역사에 남긴 상처와 유산
킹 목사의 암살은 인권 운동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었습니다. 전 미국을 뒤흔든 충격과 분노는 입법 계기로 작용해, 암살 불과 일주일 만에 공정주거법(Fair Housing Act)을 포함한 1968년 시민권법 통과를 앞당겼습니다. 참고로 1964년 시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은 암살 이전에 이미 통과된 법안입니다. 레이의 죽음과 함께 그 사건을 둘러싼 길고 어두운 장막이 내려졌지만, 킹 목사가 남긴 평등의 유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