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피해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
1877년 타협(Compromise of 1877)으로 인해 가장 많은 손실을 입은 집단은 단연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였습니다.
1876년 대통령 선거와 정치적 교착 상태
1876년 대통령 선거 이후, 민주당 후보인 새뮤얼 J. 틸던(Samuel J. Tilden)이 대통령 당선에 유력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남부 4개 주가 서로 상충하는 선거인단 명부를 제출하면서 상황이 뒤바뀌었고, 이로 인해 공화당 후버트 B. 헤이스(Rutherford B. Hayes)가 단 한 표 차이로 선거인단에서 앞서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가 의회로 넘어가자, 양측 간의 협상 끝에 하나의 타협이 성립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헤이스에게 대통령직을 넘겨주는 대신, 헤이스가 남부에 잔존하고 있던 연방군을 철수시키고 재건 시대(Reconstruction)를 종식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재건 종식과 짐 크로 법의 등장
재건 시대가 끝나자, 남부 주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권리와 기회를 심각하게 제약하는 일련의 법률, 이른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을 자유롭게 시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법률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참정권을 사실상 박탈하여 투표와 정치 과정 참여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미국 사회 전반의 모든 영역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법적(de jure) 및 사실상(de facto)의 인종 분리를 초래했습니다.
타협의 역사적 의미와 유산
1877년 타협은 사실상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백인이 장악한 남부 주 정부의 손에 내맡겨 버린 결과를 낳았습니다. 연방 정부의 감독이 사라지면서 남부에서는 인종 차별이 제도적으로 고착화되었고, 이는 이후 한 세기에 걸친 인종 분리와 불평등의 길을 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