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3년, 프랑스 예수회 선교사 자크 마르케트(Jacques Marquette)와 모피 상인 출신 탐험가 루이 졸리에(Louis Joliet)는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가는 역사적인 항해를 감행했습니다. 이 탐험은 북미 대륙 내륙 지역에 대한 유럽인들의 이해를 넓히는 중요한 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위대한 항해를 뒷받침한 후원자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후원자: 프롱트낙 백작과 장 탈롱
마르케트와 졸리에의 미시시피 강 항해는 당시 누벨프랑스(Nouvelle-France, 신프랑스)의 총독이었던 루이 드 부아드, 프롱트낙 백작(Louis de Buade, Comte de Frontenac)과 누벨프랑스의 감독관(총괄 관리관)이었던 장 탈롱(Jean Talon)의 후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프롱트낙 백작
프롱트낙 백작은 1672년부터 누벨프랑스의 총독으로 임명되어 식민지 확장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인 인물입니다. 그는 서쪽 미개척 지역으로의 진출을 통해 새로운 영토와 무역로를 확보하고자 했으며, 미시시피 강이 멕시코만으로 흘러든다는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탐사 계획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장 탈롱
장 탈롱은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파견한 감독관으로서, 누벨프랑스의 경제 발전과 인구 증가를 이끈 실무형 행정가였습니다. 그는 모피 무역의 새로운 교역로 개척에 큰 가치를 두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졸리에의 탐사 계획에 재정적·행정적으로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탐험의 목적과 의미
두 사람의 항해에는 여러 목적이 담겨 있었습니다. 첫째, 미시시피 강이 태평양이나 멕시코만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여 아시아로 통하는 서북항로의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이었고, 둘째, 원주민 부족들과의 관계를 구축하며 모피 무역망을 확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마르케트와 졸리에는 위스콘신 강을 거쳐 미시시피 강에 도달했고, 일리노이 강까지 항해한 뒤 안전하게 귀환했습니다. 비록 최종 목표지인 멕시코만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이 탐험은 미시시피 강 유역이 스페인령 남부 지역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으며, 이후 라살(René-Robert Cavelier de La Salle)의 본격적인 하류 탐사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크 마르케트와 루이 졸리에의 미시시피 강 항해는 누벨프랑스 총독 프롱트낙 백작과 감독관 장 탈롱이라는 두 강력한 후원자 덕분에 현실이 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