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의 아들, 텔레고노스는 누구인가?
그리스 신화에서 텔레고노스(Telegonus)는 마녀 키르케(Circe)와 영웅 오디세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이후 긴 귀향 여정 중 키르케가 사는 섬 에아이아에 머물렀고,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텔레고니아』에 담긴 비극
텔레고노스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이야기는 서사시 환(Epic Cycle) 중 하나인 에우가몬의 『텔레고니아(Telegony)』에서 전해집니다. 성년이 된 텔레고노스는 친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바다로 나섰지만, 거센 폭풍으로 항해가 어긋나 결국 이타카 섬에 닿게 됩니다.
배가 고파진 텔레고노스 일행은 섬에서 가축을 잡아 먹었고, 이는 오디세우스의 재산을 침해하는 행위였습니다. 분노한 오디세우스가 무장하고 달려나왔고, 격한 싸움 끝에 텔레고노스는 어머니 키르케가 준 가오리 가시가 박힌 독창(毒槍)으로 상대를 쓰러뜨립니다. 그러나 그 순간까지 그는 자신이 쓰러뜨린 사람이 바로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참극
텔레고노스의 살해는 고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얼굴은 물론 아버지가 사는 땅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알지 못함에서 비롯된 참극'의 전형으로, 인간이 운명과 우연 앞에서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비극 이후의 이야기
진실을 알게 된 텔레고노스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오디세우스의 유해와 함께 미망인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데리고 에아이아 섬으로 돌아갔다고 전해집니다.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장례 지내게 했으며, 일부 전승에 따르면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에게 불멸을 부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또 다른 전승에서는 텔레고노스가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가 키르케와 각각 혼인했다고 전합니다.
맺음말
키르케의 아들 텔레고노스는 원한이나 음모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벌어진 불운한 조우 속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디세이아』의 대단원 이후를 그린 『텔레고니아』는 영광으로 끝나야 할 영웅의 삶이 어떻게 예기치 못한 운명으로 막을 내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잔혹하면서도 인간적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