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경은 누가, 어떻게 정해졌을까?

제1차 세계대전은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한 베르사유 조약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질서 속에서 각국의 국경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한 것일까요?

1919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과 패전국 대표들이 파리에 모였습니다. 새로운 국제 질서를 합의하기 위해 마련된 평화회의의 핵심 의제는 바로 국경 획정과 분쟁 해결이었습니다.

회담의 중심에는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서 있었습니다. 그는 기존의 권력 정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을 제안했습니다. 도덕성과 투명성, 그리고 민족 자결권을 내세운 것입니다. 마치에 구르니(Maciej Górny)는 저서 『기적 없는 폴란드』에서 다음과 같이 적습니다.

이론상 윌슨의 원칙은 모두에게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동맹국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충돌하지 않으리라 생각했고, 패전국 독일은 민족 자결권이 자신들에게도 적용되기를 희망하며 큰 영토 상실은 없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양측 모두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모욕당한 이탈리아인들

회의 초반, 모든 결정은 프랑스, 일본, 영국, 미국, 이탈리아 등 강대국 대표(정부 수반과 외무장관)로 구성된 '10개국 평의회'가 내리기로 합의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런던에서 체결된 밀약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달마티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영토의 일부를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토리오 오를란도 총리와 시드니 손니노 외무장관은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죠. 하지만 평의회는 이탈리아의 요구를 강경하게 거부했습니다. 논쟁이 격화되자 우드로 윌슨은 언론을 통해 이탈리아 여론에 직접 호소하기까지 했습니다. 그의 생각에 새로운 유럽 질서를 책임지는 것은 승전국들이며, 따라서 티롤 지방 할양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경은 누가, 어떻게 정해졌을까?

제1차 세계대전의 '거인 4인':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오를란도, 조르주 클레망소, 그리고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

예상대로 윌슨의 주장은 널리 호응을 얻었지만… 이탈리아만은 예외였습니다. 오를란도 대통령과 손니노 외무장관은 '국익 배신'이라는 진흙탕 비난을 받으며 항의의 표시로 파리를 떠났습니다. 바로 이때 '찢어진 승리(vittoria mutilata)', 즉 '몸이 불구가 된 승리'라는 용어가 굳어졌습니다.

한편 회의의 의사결정 구조는 급격히 변모해 갔습니다. 마치에 구르니는 『기적 없는 폴란드』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10개국 평의회는 실질적으로 곧 각 강국 대표 1인씩으로 구성된 5개국 평의회가 되었습니다. 서구 열강이 일본을 무시하면서 곧 4개국 평의회가 되었고, 강국 지도자들이 이탈리아의 열망을 비슷하게 무시하면서 결국 3개국 평의회로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엘리트들의 논의는 점점 더 비공개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는 협상 분위기 악화로 이어졌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회의에 참여했지만, 그가 함께 만들어가던 이 과정은 그가 최근 선포한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동부 문제를 두고 벌어진 논쟁

평화회의의 분위기는 결코 화기애애하지 않았습니다. 독일에게 세계대전 발발의 모든 책임이 전가되었습니다. 처벌은 가혹했습니다. 막대한 배상금, 국가의 비무장화, 식민지 박탈, 그리고 윌슨의 보장과는 달리 영토의 일부 상실까지 요구되었습니다. 독일 제국은 수많은 땅을 잃었고, 그중에는 독일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과 오스트리아의 통합(안슐루스)까지 금지당했습니다. 정치 엘리트와 여론의 요구는 완전히 무시된 셈입니다. 더 나쁜 것은, 쓰러진 사람에게 발길질을 하는 격으로 동부에서 벌어진 변화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평화 결정의 수혜자인 새로운 이웃들이 등장한 것입니다. 폴란드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슬로베니아인에게 영토가 주어졌지만, 그 국경을 정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경은 누가, 어떻게 정해졌을까?

이 글은 마치에 구르니의 『기적 없는 폴란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아고라 출판사)를 비롯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동유럽 각국의 사절단은 동포들 눈에는 진정한 영웅이었지만, 회의장에서는 반신반의의 시선을 받았습니다. 축소된 평의회는 폴란드 대표단인 드모프스키와 파데레프스키에게 충분히 발언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그들의 논거를 경청하기보다는 질문만 던지는 태도를 취했습니다. 분개한 드모프스키는 훗날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를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동유럽 다른 국가 대표들도 비슷한 소감을 남겼습니다.

실수가 낳은 비극

외교관들 사이의 분위기는 매우 팽팽했습니다. 오만하다는 평판을 얻고 회의에서 끊임없이 소외되던 드모프스키는 곳곳에서 '유대인 음모'를 찾아 헤매었습니다. 루마니아 총리 이온 브러티아누는 강대국이 자국 문제를 무례하게 대한다며 격분하여, 시위 삼아 회의에 불참하기도 했습니다.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경은 누가, 어떻게 정해졌을까?

오만하다고 여겨지고 회의에서 계속 배제되던 드모프스키는 곳곳에서 '유대인 음모'를 찾았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통계와 지도상의 국경선을 왜곡하며 현실을 제멋대로 구부려 놓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평의회는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또한 정치인들은 동유럽의 문제를 사절단만큼 깊이 알지 못했기에 잦은 오판을 되풀이했고, 특정 지역의 귀속 문제가 무엇에서 비롯된 것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학문의 힘으로 머리를 맞대다

결국 학문에 근거한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무게를 얻게 됩니다. 이에 3개국 평의회는 과학자들이 준비한 자료에 의존했고, 의문이 생기면 해당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들을 섭외하여 쟁점을 검증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폴란드의 국민정체성별 인구 분포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 외우게니우시 로메르(Eugeniusz Romer) 같은 인물이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세르브-크로아트-슬로베니아 왕국에 설정된 국경은 정치인이 아니라 학자들의 작업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다뤄진 폴란드 문제

승전국들은 단순히 폴란드 민족의 주장 때문에만 폴란드 건국의 필요성을 지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는 유럽을 공산주의로부터 막아주는 일종의 방파제 역할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분할 지배에서 스스로를 해방한 대폴란드 봉기의 성과에 더해, 폴란드는 포메라니아 회랑(단치히 제외)을 받았고, 실레시아, 바르미아, 마주리에서는 주민투표가 실시되기로 했습니다.

동부 국경은 니멘-그로드노-빌뉴스-디나부르크 선을 따라 설정되었지만, 폴란드-볼셰비키 전쟁으로 인해 훗날에야 확정되었습니다. 평의회의 결정이 들으면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또 하나의 실패였고 숙청과 봉기 과정에서 피바람을 부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마치에 구르니는 이렇게 총평합니다.

결국 평화회의의 결정은 명백한 수혜국으로 보이는 나라들조차 포함해 거의 모든 이를 실망시켰습니다.

패전국의 좌절은 가장 이해하기 쉽습니다. 배상금을 물어야 했고 영토의 일부(헝가리의 경우 그 대부분)를 빼앗겼으니까요.

폴란드 제2공화국의 국경은 누가, 어떻게 정해졌을까?

파리에서 새로운 전후 현실 속 유럽 지도의 모습이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승전국의 희망도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은 프랑스가 바랐던 만큼 약화되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는 기대보다 적게 얻었고, 헝가리 영토 일부를 루마니아에 내주어야 했던 유고슬라비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독일을 희생으로 폴란드가 얻은 영토, 오스트리아를 희생으로 세르브-크로아트-슬로베니아 왕국이 얻은 영토는 주민투표에서 다수 유권자가 민족과 무관하게 기존 소속 국가의 유지를 선택하면서 그 효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사실상 원하는 것을 거의 모두 얻은 루마니아조차 만인의 환호 속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참고 문헌

  1. Gerwarth, R., 『Defeated(패전자들)』, Rebis 출판사, 포즈난, 2017.
  2. Górny, M., 『Polska bez cudów(기적 없는 폴란드)』, Agora 출판사, 바르샤바, 2021.
  3. Pajewski, J.,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 PWN(폴란드 과학출판사), 바르샤바,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