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 최대의 미스터리 중 하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험 중 하나로 꼽히는 '루이스와 클라크 탐사'를 이끈 메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의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 미스터리입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그는 1809년 10월, 면도칼로 자신의 목을 베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나 일부 역사학자들은 루이스가 살해당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살인설을 뒷받침하는 의문점들
루이스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제기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루이스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면도칼이 시신에서 떨어진 바닥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사망하기 며칠 전까지 루이스가 평온하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는 목격자들의 증언이 여럿 남아 있습니다. 셋째, 루이스가 머물던 방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강제 침입의 흔적은 없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정황이 오히려 치밀하게 조작된 현장임을 시사한다고 해석합니다.
정치적 원한인가, 개인적 갈등인가
살인설을 지지하는 역사학자들은 배후 세력에 대해 두 가지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정치적 적들에 의한 살해입니다. 루이스는 개인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수많은 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특히 루이지애나 준주 탐사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일부 정부 관료들에게 큰 반감을 샀습니다. 두 번째는 로맨틱한 경쟁자에 의한 살해입니다. 루이스는 여성 인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누군가의 아내나 연인과 불륜을 맺으면서 상대방의 분노를 산 것일 수 있다는 추측입니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
당시 루이스는 루이지애나 준주 총독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워싱턴 D.C.로 향하던 길에 테네시주 내체즈 트레일(Natchez Trace)의 여관 '그라인더 스탠드'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오랜 동료였던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은 자살이라고 확신했지만, 후대의 학자들은 시신 발굴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를 이어왔습니다. 안타깝게도 발굴 요청은 번번이 거부되었습니다.
결국 메리웨더 루이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살설과 살인설이 교차하는 다양한 이론들은 지금도 역사학자들과 일반 대중의 깊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