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692년 살렘 마녀재판에 연루된 부유층 인물들은 누구였을까?

1692년부터 1693년까지 미국 매사추세츠 식민지 살렘에서 벌어진 마녀재판은 단순한 집단적 공포를 넘어, 당시 사회의 권력과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역사적 사건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재판의 핵심 인물들 상당수는 지역 유력자였던 부유층 출신이었는데요. 그렇다면 살렘 마녀재판과 관련된 대표적인 부자들은 누구였을까요?

1. 토머스 퍼트넘(Thomas Putnam)

토머스 퍼트넘은 살렘 지역의 부유한 농장주이자 대지주로,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으며 치안판사(magistrate)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는 탐욕과 야망으로 악명이 높았고, 마녀재판 기간 동안 가장 활발하게 고발에 가담한 인물 중 한 명이었습니다. 실제로 딸 애너와 아내 앤을 통해 수십 건의 고발이 그의 가문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부 역사가들은 이를 경쟁 가문의 토지를 노린 행위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2. 에드워드 퍼트넘(Edward Putnam)

에드워드 퍼트넘은 토머스 퍼트넘의 형제로, 역시 살렘에서 부유한 농장주이자 대지주였습니다. 그 또한 치안판사를 지냈으며 마녀재판 과정에서 판사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퍼트넘 가문은 이처럼 재판 전반에 걸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3. 존 호손(John Hathorne)

존 호손은 부유한 상인이자 선주(船主)로서 살렘의 유력 인사였습니다. 그는 치안판사로 임명되어 마녀재판의 판사를 맡았으며, 엄격하고 청교도적인 신앙관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그는 피고인들에게 거의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강경한 태도로 재판을 진행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참고로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이 그의 후손이라는 점도 자주 언급됩니다.

4. 윌리엄 스토턴(William Stoughton)

윌리엄 스토턴은 부유한 판사이자 정치가로, 마녀재판을 주관했던 '오예르 앤 터미너 법원(Court of Oyer and Terminer)'의 수석 판사를 역임했습니다. 그는 피고 마녀들에게 극도로 가혹하고 무자비한 처우를 일삼은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증거가 불충분하더라도 사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그는 매사추세츠 식민지 총독 대행까지 지냈습니다.

5. 새뮤얼 시월(Samuel Sewall)

새뮤얼 시월은 부유한 상인이자 판사로, 초기에는 마녀재판에 관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인물들과 달리 훗날 자신의 판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공개적으로 뉘우친 몇 안 되는 인물입니다. 1697년에는 교회에서 공개 사죄문을 읽기도 했습니다. 그는 독실한 신앙심과 정의감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반성 덕분에 오늘날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마무리

살렘 마녀재판은 종교적 광신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권력·토지·경제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사건이었습니다. 위 인물들이 보여주듯 당시 재판의 주도권은 상당 부분 지역의 부유층과 유력자들에게 있었으며, 이 점이 재판의 왜곡된 진행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