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로마 군단병이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고? '아리아인' 롱기누스 전설과 나치의 역사 왜곡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최초의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이지만, 만약 우리가 크게 잘못 알고 있다면 어떨까요? 일부 독일 신학자들에 따르면 새 종교의 첫 번째 추종자는 다름 아닌 '롱기누스(Longinus)'라는 이름의 로마 군인이었고, 게다가 그의 핏줄에는 아리아인의 피가 흘렀다고 주장합니다.

롱기누스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인물이 바로 이 로마 백인대장입니다. 그 순간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상징이 되었죠. 그런데 어째서 열두 제자가 아니라 이 로마 군인이 '첫 번째 기독교인'이 된다는 걸까요? 시드니 D. 커크패트릭(Sidney D. Kirkpatrick)은 저서 『히틀러와 성스러운 상징』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롱기누스라는 이름은 초기 기독교 외경 집필본에서 처음 등장한다. 한 로마 군단에서 성실하게 복무하던 백인대장(센투리오)이 시력 문제로 군 생활을 중단하게 되면서부터 그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행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지만 상관들은 그를 내치지 않았습니다. 공을 인정받은 백인대장은 빌라도 총독의 명으로 비교적 수월한 임무를 맡게 되는데, 그 장소가 하필 갈보리산이었습니다. 당시 그곳에서는 사형 집행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는 그 과정을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렇게 그는 예수의 수난과 십자가형의 현장에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로마 군단병이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고?  아리아인  롱기누스 전설과 나치의 역사 왜곡

모든 영광을 갖춘 '최초의 기독교인'의 모습.

갈보리산에 나타난 롱기누스

외경에 따르면 롱기누스가 나사렛 예수의 옆구리를 찌르자, 창대를 타고 흘러내린 피와 물이 그의 죄를 씻어내고 시력을 회복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이 기적적인 치유를 경험한 그는 예수의 평온함과 용기에 깊이 감명받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큰 소리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그는 군단을 떠나 28년간 로마 제국 전역을 누비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도들이 유대인 출신이라 여행에 제약이 많았던 것과 달리, 로마 시민권자였던 그는 제국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죠. 그러나 결국 법과 충돌하여 체포되었고, 혹독한 고문 끝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자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의 머리는 창에 꽂혀 예루살렘으로 운반되었으며, 몇 세기가 지난 후 그는 순교자로서 성인(聖人)에 올랐습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독일의 학자들은 이 전설을 훨씬 '흥미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아리아인' 롱기누스,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다

신학자들, 심지어 중세 후기의 학자들조차 롱기누스를 아리아인으로 보았습니다. 로마에 정복당한 카파도키아 지역에 거주하던 게르만 부족의 후손이라는 것이죠. 더 나아가 이 해석에 따르면 그 백인대장은 최초의 기독교인이 되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주장이 가능할까요? 그 논리는 이렇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죽음으로 속죄를 완성한 순간 비로소 시작되었으며, 롱기누스는 '메시아의 뼈는 부러지지 않고 창에 찔릴 것'이라는 구약의 예언을 성취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신성을 인정한 그 백인대장은 자동적으로 새 종교의 첫 번째 신자가 되는 셈입니다. 꽤 독창적인 발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로마 군단병이 최초의 기독교인이었다고?  아리아인  롱기누스 전설과 나치의 역사 왜곡

성 롱기누스의 참수 장면. 리샤르 드 몽바스통(Richard de Monbaston)의 14세기 『성인전』 삽화

이러한 해석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과 이후 모두 독일 교회의 강단에서 널리 퍼졌고, 독일 민족의 특별한 역사적 사명을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았습니다. 동시에 시드니 D. 커크패트릭이 지적했듯이, 이 이야기는 특히 다음과 같은 이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지녔습니다.

"그리스도의 역사에서 유대교의 흔적을 지우고, 예수의 메시아성과 로마 제국에서의 기독교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싶어 하는 기독교인들. 아리아인 롱기누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죄의 정화와 구원의 길은 오직 투쟁과 피 흘림을 통해서만 열린다."

수백 년의 전통으로 정당화된 이 해석이 나치즘의 세계사 관점에 얼마나 잘 들어맞았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죠. 실제로 나치당 요인들 사이에서도 이 이야기는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롱기누스는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로서, 수세기에 걸친 피바람 속 전쟁을 치러온 독일 민족 신성 로마 제국의 역대 군주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인물이었고, 당시 국방군이 싸우던 상대 역시 바로 그 '이웃'들이었으니까요.

심지어 나치 체제에 협력한 일부 개신교 신학자들은 롱기누스가 유대인 박해자들의 손에서 아리아인 구원자를 구하려 했다는 주장까지 내놓았습니다. 결국 그 시도는 실패했고, 그래서 그는 '그저' 최초의 기독교인으로 남았다는 것이죠.

출처

기본 자료:

  • Sidney D. Kirkpatrick, 『히틀러와 성스러운 상징(Hitler and the Holy Insignia)』, Wydawnictwo Literackie, 2012

보충 자료:

  • 성 롱기누스, 군인이자 순교자의 생애(Life of Saint Longin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