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동성애자 수감자, 정확히 몇 명이었을까?

나치 정권의 동성애자 박해는 오랫동안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그러나 폴란드 역사학자가 이제야 나치 독일 최대의 '죽음의 공장'에 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끌려간 남성들의 정확한 숫자를 집계해냈다.

보흐단 피엥트카(Bohdan Piętka)는 논문 「KL 아우슈비츠의 분홍 삼각표 수감자들」에서 민감하면서도 거의 연구되지 않은 주제를 다룬다. 바로 독일 형법 제175조를 근거로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이들의 운명이다. 당시 이 조항은 "남성 간 또는 인간과 동물 간의 비자연적 음행은 시민권 박탈을 포함한 징역형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흥미롭게도 입법자는 여성 간의 동성 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을 규정하지 않았다.

분홍 삼각표를 달아야 했던 '타락자'들

연구에 따르면 동성애 혐의로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이는 모두 97명으로, 대부분 독일인이었다. 아우슈비츠에 등록된 약 40만 명의 수감자를 기준으로 하면 제175조 적용 수감자는 전체의 0.019~0.025퍼센트에 불과한 소수였다. 저자는 부분적으로 보존된 수용소 기록물(호송 명단, 일일 기록부, 수용소 사진 자료 등)을 면밀히 검토해 이 가운데 약 80명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복원해냈다.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동성애자 수감자, 정확히 몇 명이었을까?

동성애 혐의로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두 수감자의 수용소 사진.

이들 중 유대인은 단 한 명(독일 국적)뿐이었고, 소수의 체코인이 있었다. 행정상으로는 형사 수감자 또는 성범죄자 지위로 분류되었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추악한 범죄'라는 낙인과 수용소에서 강제로 달아야 했던 분홍색 삼각표였다. 대다수의 체포 경위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저자는 일부 사례를 밝혀냈다. 어떤 이들은 풍기 경찰의 감시 속에 매춘으로 적발되었고, 심문 과정에서 거래 상대를 지목하면서 그들마저 연쇄적으로 체포되었다. 또 한 명은 질투에 눈이 먼 동거인의 밀고로 끌려갔다.

경찰관, 엔지니어, 성직자, 의사까지…

남아 있는 사망 진단서를 통해 저자는 24명이 복음주의(개신교) 신자였고 11명은 가톨릭 신자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사회적 배경 역시 당시 독일 사회의 전 영역을 아우른다. 지식인과 장인, 노동자와 농부까지 다양했다. 지식인 계층에는 공무원, 엔지니어, 슈체친 출신 배우, 경찰관, 대학생, 성직자, 판사, 의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인, 도예가, 선원의 이름도 발견되었다. 이들 중 최고령자는 69세로 1941년 10월 31일 수용소에 도착했으나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목숨을 잃었다. 최연소자는 25세로, 1944년 11월 7일 다하우 강제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동성애자 수감자, 정확히 몇 명이었을까?

아우구스트 파이퍼(August Pfeiffer). 1941년 11월 1일 형법 제175조 위반으로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다.

죽음 아니면 굴욕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동성애자 대부분은 해방의 날을 맞이하지 못했다. 최소 43명이 학살되었고, 17명은 다른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것이 확인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해방을 직접 맞은 이는 단 한 명뿐이었다. 또 한 명은 알려지지 않은 경위로 석방되었으며, 나머지의 최후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조차 나치 독일의 붕괴 이후 곧바로 자유를 얻지 못했다. 1950년대에도 동독과 서독이 공동으로 꾸린 위원회는 제175조로 수감된 이들을 나치즘 피해자로 인정하기를 거부했다. 성적 지향 자체가 범죄라는 논리였다. 독일에서 제175조의 잔존 조항이 완전히 폐지되기까지는 1990년대까지 긴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출처

  • Bohdan Piętka, 「KL 아우슈비츠의 분홍 삼각표 수감자들」, 『최근 역사』 2014년 제2호

'역사 뉴스', 어떤 코너인가?

'역사 뉴스' 코너는 역사계의 가장 최근 소식을 전하는 자리다. 폴란드를 비롯한 세계 각국 학자들의 발견 가운데 빛을 보지 못했거나 외면당한 성과들을 조명한다. 과거를 연구하는 현장에서는 늘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코너의 소식은 짧고 알기 쉽다. 2~3천 자 분량으로 학자들이 수십 페이지에 걸쳐 난해하게 서술한 발견을 요약해 전한다. 정말 중요한 내용만 담는다. 지루함은 없다.

최근 18개월 이내의 학술 논문을 기반으로 한다. 역사학계에서는 소식이 느리게 퍼지고 학술 저작이 독자에게 닿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다른 분야에서 24시간이면 뉴스 가치를 잃는 것도 역사에서는 1년 후에 화제가 되곤 한다.

소식을 준비할 때 가장 권위 있는 역사학 학술지 목록을 참고한다. 출판사나 저자라면 특정 논문을 다뤄주길 원할 경우 편집부 우편 주소 또는 전자본으로 보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