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누구와 바람을 피웠을까?

카이사르의 가장 유명한 연인, 세르빌리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생전에 여러 차례 혼외정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중에서도 가장 널리 회자된 상대는 바로 세르빌리아 카에피오니스(Servilia Caepionis)였습니다.

세르빌리아는 훗날 카이사르를 암살하게 되는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의 어머니입니다. 즉, 카이사르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정치적 동맹의 어머니와 오랜 기간 밀월 관계를 이어갔던 셈입니다.

관계의 시작: 기원전 63년경

두 사람의 불륜은 기원전 63년경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카이사르는 40대 초반, 세르빌리아는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였습니다. 수에토니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세르빌리아에게 당시 기준으로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진주까지 선물했다고 전해지며, 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일시적 만남이 아니라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로마 기준으로는 '스캔들'이 아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불륜이 당대에 크게 문제 삼히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소문 자체는 로마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권력 있는 남성이 혼외 관계를 갖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카이사르의 방대한 정치적 야망과 군사적 업적에 비하면 개인적인 스캔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운명적인 아들, 브루투스

이 관계를 더욱 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세르빌리아의 아들 브루투스의 존재입니다. 브루투스는 어린 시절부터 카이사르의 후원 아래 성장했으며, 카이사르 역시 그를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44년, 브루투스는 공화정 수호를 명분으로 카이사르 암살 음모의 핵심 인물이 됩니다. 연인의 아들이자 정치적 양자 같은 존재에게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카이사르와 세르빌리아의 관계는 로마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아이러니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