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스파르타쿠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보다 앞선 시대에 살았던 인물입니다.
노예 반란의 지도자, 스파르타쿠스
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 출신의 검투사로, 기원전 73년부터 71년까지 로마 공화정을 뒤흔든 대규모 노예 반란, 이른바 '제3차 노예 전쟁'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노예와 하층민을 규합하여 로마군을 여러 차례 격파하며 로마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러나 반란은 결국 기원전 71년, 로마의 유력 정치가이자 장군인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습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이 전투에서 최후를 맞이했고, 생포된 반란군들은 아피아 가도를 따라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카이사르는 그때 어디에 있었나?
흥미롭게도 스파르타쿠스의 난이 일어났을 무렵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아직 젊은 신진 정치인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그는 스페인에서 재무관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는 중이었고, 반란 진압 작전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카이사르는 기원전 100년경 태어나 기원전 44년까지 살았으며, 연이은 군사적 성공을 발판 삼아 권력의 정점에 올랐습니다. 기원전 59년에는 로마 집정관에 선출되었고, 기원전 51년 갈리아 정복을 완수하며 뛰어난 군사 지휘관으로서의 명성을 확립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우려한 원로원 의원들의 음모로 인해, 카이사르는 기원전 44년 3월 15일 원로원에서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두 인물의 시대적 관계
정리하면, 스파르타쿠스의 반란(기원전 73~71년)은 카이사르가 본격적으로 권력을 키우기 훨씬 전에 벌어진 사건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로마 공화정 말기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지만,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