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역사

이집트 제1중간기 (기원전 2200년~2160년): 왕권의 몰락과 혼돈의 시대

이집트 제1중간기 (기원전 2200년~2160년): 왕권의 몰락과 혼돈의 시대

제7왕조부터 제10왕조까지

고왕국 시대 내내 서서히 진행된 중앙 집권 행정의 쇠퇴에 기원전 2200년부터 2150년 사이의 극심한 가뭄까지 겹치면서, 이집트는 약 140년 동안 기근과 내전이 지배하는 암울한 시기에 접어듭니다. 방비가 허술해진 나라는 현명한 군주와 외세 침략자가 교차하는 어두운 시대를 맞이하고, 실권 없는 파라오들이 왕좌를 두고 다투며 빠른 속도로 교체됩니다.

왕권과 중앙집권 국가의 붕괴

노마르크(주(州) 행정관)들이 각 지역에서 권력을 장악하면서 왕권과 중앙집권 국가는 무너졌습니다. 나라는 분열되어 큰 혼란의 시대에 들어섭니다. 그러나 노마르크들이 더 이상 파라오에게 공물을 바칠 의무가 없어지고 지역 자원을 직접 통제하게 되면서, 지방은 오히려 부유해졌습니다. 그들은 고위 관료들과 함께 티니스 시대의 파라오들처럼 화려한 마스타바(직사각형 평상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집트 제1중간기 (기원전 2200년~2160년): 왕권의 몰락과 혼돈의 시대

민중 혁명

이집트 백성들은 들일과 가혹한 부역에 지쳐 있었습니다. 결국 거칠고 피비린내 나는 혁명이 폭발합니다. 부자들은 몰락하고 재산은 약탈당했으며, 무덤은 파괴되어 도적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어떤 이집트인들은 이런 격변을 한탄했지만, 또 다른 이들은 이를 환영했습니다. 그때까지 평민의 죽은 이들은 소박한 돗자리에 말아진 채, 한 줌의 대추야자와 항아리, 때로는 작은 장신구 하나만 곁들여 저승길에 오르도록 사막 모래에 묻혔습니다. 이제 평민들도 불멸에 이르기 위해, 그동안 파라오와 귀족들만이 독점하던 장례 의식의 의례적·주술적 절차를 자신들의 것으로 삼았습니다. 창의력이 넘치던 지방 장인들은 구왕국 시대에 쓰이던 문화적 모티프를 자신들의 무덤에 맞게 받아들이고 변형했습니다. 그 결과 오시리스 숭배는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문학 혁명

일부 서기관들은 당시 특유의 낙관주의와 독창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문학 양식을 개척했습니다.

예술 혁명

이 시기 이집트에서는 알라바스터(석회석), 화강암, 금이 귀해지면서 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깎을 돌블록도 새길 벽면도 없어지자 조각상은 작아지고 화려함은 줄었지만, 오히려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더욱 감동을 주게 되었습니다. 생활 장면들은 장난감과 흡사한 스타일의 작은 모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2160년경

3개 경쟁 왕국의 형성

멤피스에서 멀어질수록 통치자와 왕자들은 파라오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각자 더 많은 영토와 권력을 좇으면서 지방 세력들은 서로 경쟁하기 시작했고, 이집트는 결국 3개의 경쟁 왕국으로 갈라졌습니다.
– 아시아에서 건너온 유목민들이 북부 델타 지역을 장악합니다.
– 헤라클레오폴리스의 왕자들이 중부 이집트를 통제합니다.
– 테베의 왕자들이 남부 상이집트를 통제합니다.

제1중간기의 종말

테베 왕자들의 세력은 갈수록 커져 북쪽으로 확장되었고, 마침내 적대 세력을 격파하며 승리를 거둡니다. 이로써 제11왕조가 성립되었고, 안테프와 멘투호테프가 군주로 즉위했습니다.

제1중간기의 왕조와 파라오 목록

제7왕조: 마네토에 따르면 단 70일 동안 70명의 파라오가 즉위했다고 전해지며, 다음 인물들이 포함됩니다. 네제르카레, 멘카레, 네페르카레 2세(소(小) 네페르카레), 네페르카레 3세, 제드카레 2세, 네페르카레 4세, 메렌호르, 네페르카밈 1세, 니카레, 네페르카레 5세, 네페르카호르

제8왕조: 역시 여러 왕권이 난립한 시기로, 다음 인물들이 포함됩니다. 네페르카레 6세, 네페르카밈 2세, 이비 1세, 네페르카우레, 네페르카우호르, 네페르이르카레 2세, 세켐카레, 우아즈카레, 이티, 임호텝, 호테프, 쿠이, 이수, 이테누

제9왕조와 제10왕조 (헤라클레오폴리스 왕조, 기원전 2220년~2160년): 메리브레 케티 1세, 메리카레, 네페르카레 7세, 케티 2세, 케티 3세, 케티 4세, 케티 5세, 케티 6세, 케티 7세, 메리카레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