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카이사르는 기원전 75년에 재무관으로 선출되어 히스파니아 울테리오(Hispania Ulterior)에서 봉사했습니다. 그는 재무관으로서 전직 도지사의 비리를 조사하고 불법 행위로 다양한 개인을 성공적으로 기소했습니다.
2. 카이사르는 기원전 65년에 평민의 호민관으로 선출되어 로마에서 가장 강력한 행정관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트리뷴 재임 기간 동안 토지 분배 법안과 곡물 분배 법안을 포함하여 몇 가지 중요한 법률을 제정했습니다.
3. 기원전 63년에 카이사르는 로마 종교의 대제사장인 폰티펙스 막시무스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종교 문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안겨주는 권위 있는 직위였습니다.
4. 카이사르는 기원전 62년에 법무관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법무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그는 여러 가지 중요한 재판을 주재했으며 공공 건물 건설도 감독했습니다.
5. 기원전 61년에 카이사르는 히스파니아 시테리오르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총독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지역 부족의 공격으로부터 속주를 성공적으로 방어했으며 로마 영토도 확장했습니다.
6. 카이사르는 기원전 60년에 로마로 돌아와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와 동맹을 맺었는데, 이는 제1차 삼두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동맹을 통해 카이사르는 기원전 59년에 영사직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7. 집정관으로서 카이사르는 농지 개혁 법안과 갈리아 키살피나의 모든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포함한 몇 가지 중요한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8. 기원전 58년에 카이사르는 갈리아 키살피나와 트란살피나 갈리아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갈리아에서 일련의 군사 작전을 시작하여 결국 전체 지역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9. 갈리아에서의 카이사르의 군사적 성공은 그를 로마 국민들에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인기 있게 만들었고 또한 로마에서 그의 정치적 권력을 증가시켰습니다.
10. 카이사르의 원로원 재임 기간은 기원전 49년에 군대와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하면서 끝났습니다. 이 행위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사이의 내전의 시작을 의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