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제2차 세계대전, 제로 전투기 에이스들이 선보인 '죽음의 춤'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 애호가들에게 늘 새로운 이야기를 건네는 주제다. 하지만 서구에서는 연합군 영웅들의 활약을 잘 알고 있어도,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 전선은 그나마 낫지만, 태평양 전역으로 눈을 돌리면 일본군의 주인공을 이름과 함께 꼽아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늘은 패전국의 일원으로 싸웠고, 역사가 자주 잊어버리는 이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붙여주고자 한다.

단 한 발의 총알도 쏘지 않은 '전투'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사실 전투라고 부르기 어렵다. 단 한 발의 총알도 발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카이 사부로(坂井三郎)로, 전쟁 기간 일본 해군 항공대를 대표하는 에이스 중 한 명이자 종전까지 살아남아 노년을 맞이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2000년, 미국 참전 용사들과의 우정 만찬에 영빈으로 초대받아 참석하던 자리에서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제2차 세계대전, 제로 전투기 에이스들이 선보인  죽음의 춤

사카이 사부로

마셜 제도의 라에(Lae) 기지에 배치되어 있던 사카이는 일본 항공대의 또 다른 전설적인 인물들, 니시자와 히로요시와 오타 도시오와 함께 근무하게 된다. 셋은 금세 친해졌고, 미군 P-39 편대에게는 악몽 그 자체가 되었다. 출격할 때마다 적기를 완벽하게 소탕해 왔다고 해서 사람들은 이들을 '소탕 트리오(Cleaning Trio)'라 불렀다. 1942년, 제로 전투기가 아직 남태평양의 하늘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생상스의 '죽음의 춤'에서 시작된 계획

어느 날, 세 친구는 막사에서 호주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었다. 스피커의 금속성 잡음 사이로 죽음의 춤(Danse Macabre), 즉 카미유 생상스의 유명한 교향시의 선율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20세기 초 일본의 시골에서 온 평범한 출신 병사들이 19세기 교향곡을 듣자마자 알아볼 정도였다는 점은 꽤 놀라운 일이다. 시대가 아무리 험난해도 예술은 제 모습을 드러내는 모양이다. 제2차 세계대전 한복판, 태평양 한가운데 외딴 환초에서조차.

이 음악은 20대 초반의 세 청년에게 장난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적에게 아주 특별한 '죽음의 춤', 즉 '소탕 트리오'의 공중 곡예를 선사하기로 결심했다. 기회는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에는 포트모즈비의 연합군 기지에 대한 통상적인 기총소사 임무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공습은 일본군에게 큰 성과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공습의 주요 목표였던 연합군 폭격기들은 이미 숨어 버린 상태였고, 큰 피해를 입히지도 못했다. 미군 P-39 3개 편대가 활주로 방어를 위해 출격했으나 짧은 교전 끝에 흩어졌고, 일본 제로기들 역시 귀환 코스에 올랐다. 바로 그때 사카이는 적기를 추격한다는 명분으로 지휘관에게 편대 이탈을 요청했고, 오타와 니시자와도 그를 따라 나섰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어리숙한 P-39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었다. 바로 전날 밤 약속한 대로 포트모즈비 상공에서 '죽음의 춤'을 추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제로 전투기 에이스들이 선보인  죽음의 춤

적진 한복판에서 펼쳐진 공중 발레

사카이의 자서전에 따르면, 셋은 적의 하늘 한가운데 홀로 남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경험 많은 조종사들이었고, 셋을 합치면 거의 60대의 격추 기록을 보유했으며, 제로의 속도와 기동성만 있으면 어떤 위기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군은 그들을 요격하러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세 대의 전투기가 보여준 대담함, 혹은 무모함에 압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카이의 회고를 직접 들어보자.

"몇 분 만에 포트모즈비 상공으로 돌아와 12,000피트 고도에서 활주로 위를 선회했다. 대공포는 침묵했고 적 전투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두 대의 제로가 내 옆으로 붙었고, 우리는 날개 끝 사이 몇 미터 간격으로 편대를 이루었다. 니시자와와 오타가 나에게 웃음을 보냈고, 나는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나는 캐노피를 열고 머리 위로 손가락으로 원을 그린 뒤 손가락 세 개를 보여주었다. 셋이 함께 세 번의 루프를 돌기로 한 것이다.

적 전투기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뒤 나는 기수를 숙여 속도를 냈고, 니시자와와 오타가 내 비행기에 바짝 붙었다. 조종간을 당기자 제로는 훌륭하게 반응하며 높이 치솟아 배면 비행으로 전환했다. 다른 두 기체도 나를 따라 완벽한 내측 루프를 그렸다. 우리는 두 번 더 상승과 강하를 반복하며 나선회를 이어갔다. 아래에서 포문을 여는 기체는 한 대도 없었고, 하늘은 여전히 적기 한 대 없이 맑았다. 우리가 자기 부대의 기지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우리를 올려다보는 수많은 병사들을 떠올리며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제로 전투기 에이스들이 선보인  죽음의 춤

죽음의 춤

그들은 이 묘기를 반복하고 싶은 유혹마저 이겨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훨씬 위험한 고도, 미군 활주로에서 불과 1,800미터 상공에서 또 세 번의 완벽한 루프를 똑같은 동작으로 선보였다. 적의 바로 머리 위에서 펼쳐진 진정한 공중 발레였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스스로도 믿기 어려웠는지, 운명을 더 이상 시험하지 않기 위해 사카이와 두 동료는 기지로 향했고, 본대가 착륙한 지 약 20분 뒤 라에에 무사히 내려섰다. 상관들 중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완벽한 작전이라고 사카이는 생각했다. 막사에서 오타와 니시자와와 재회하자 셋은 폭소를 터뜨렸다.

적이 보내온 감사 편지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날 밤, 중위는 셋을 긴급 소집했고, 그들이 나타나자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맞이했다. 포트모즈비 상공에서 저지른 짓이 제국 해군의 엄격한 규정이 철저히 금하는 대형 무모 행위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혼나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대체 중위는 어떻게 알았을까?

궁금해할 필요도 없었다. 중위가 직접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몇 분 전, 적 전투기 한 대가 홀로 라에 상공에 나타나 아주 특별한 메시지가 담긴 편지를 투하한 것이다.

"라에 사령관 귀하
오늘 우리를 방문한 세 조종사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들이 우리 활주로 위에서 선보인 곡예 비행을 정말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정말 멋진 시연이었습니다. 같은 조종사들이 내일 목에 녹색 스카프를 두르고 다시 찾아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방문 때 충분한 환영을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만, 다음 번에는 훌륭한 환영을 준비해 두겠습니다.
포트모즈비 전투기 편대 일동"

제2차 세계대전, 제로 전투기 에이스들이 선보인  죽음의 춤

이 말을 듣고 사카이와 동료들은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중위 역시 부대 최고의 조종사 셋을 함부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들은 아슬아슬하게 구속을 면했다. 좋은 꾸중과 함께 막사로 돌려보내진 것이 전부였다. 다음 날 아침, 전쟁의 가혹한 현실이 다시 시작되었다. 화려한 곡예는 언제나처럼 납, 불, 그리고 공포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오타는 그해 과달카날에서 전사했고, 니시자와도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44년에 생을 마감했다. 두 사람은 동료 사카이처럼 늙어가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밤만큼은 그들 자신의 작은 승리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들의 '죽음의 춤'은 화려한 성공이었다. 게다가 단 한 발의 총알도 필요로 하지 않은, 아름답고 시적인 승리였다.

참고 자료

글: R. 이바르사발(R. Ibarzabal), Samurai Stories

출처:
Winged Samurai: Saburo Sakai and the Zero Fighter Pilots – Henry Sakaida
Samurai! – Saburo Sakai, Martin Caidin, Fred Sai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