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남북조시대, 오늘날 난징(南京)의 전신인 건강(建康)에 도읍을 두었던 오(吳)·동진(東晉)·송(宋)·제(齊)·량(梁)·진(陳) 여섯 왕조는 통칭 '육조(六朝)'라 불린다. 그런데 이 육조는 어느 나라 하나 제대로 오래가지 못한, 수명이 짧기로 유명한 왕조들이다. 그중에서도 단연코 짧았던 나라가 바로 이번에 소개할 '제(齊)', 곧 남제(南齊)다.
참고로 송·제·량·진 네 왕조는 따로 '남조(南朝)'라고도 부른다. 다른 남조 나라들의 이야기도 기회가 되면 함께 읽어보길 바란다.
출세가의 정석, 고황제 소도성
전국시대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밑바닥에서 출발해 천하를 호령한 무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삼국지 역시 한때 짚신을 팔던 유비와 평범한 관리 집안 출신의 조조 같은 인물들이 주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제의 개국군주 고황제(高皇帝) 소도성(蕭道成) 역시 충분히 주인공감이다.
소도성은 스스로 전한(前漢)의 명재상 소하(蕭何)의 후손이라 내세웠지만, 이를 입증할 근거는 없다. 그는 전대인 송(劉宋)의 하급 군인으로 출발해 한 걸음씩 지위를 끌어올린 인물이다.
특히 당시 최강국이던 북위(北魏)와의 전투에서 눈부신 공을 세웠고, 자체적으로 병력을 규합해 세력을 키운 탓에 송 명제(明帝)의 의심을 샀지만, 인재가 부족한 현실 탓에 계속 중용될 수밖에 없었다.
472년 명제가 세상을 떠나자 종실 간의 내분이 벌어졌고, 소도성은 이 혼란을 틈타 권력을 확장해 나간다. 황제가 교체될 때마다 실권은 그의 손에 넘어갔고, 마침내 479년 마지막 황제 순제(順帝)에게 선양을 받아 남제를 건국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소도성을 주인공으로 한 대하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기는 어려울 것 같다. 너무 순탄하고, 너무 무미건조하니까.
그리고 남조 황제들의 전통(?)대로, 고황제 소도성도 재위 불과 3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영명의 치세와 가혹한 세금
그 뒤를 이은 제2대 무제(武帝) 소택(蕭賾)은 강력한 통치 솜씨로 국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 시기는 '영명(永明)의 치'라 불릴 만큼 비교적 안정된 전성기였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부과된 가혹한 세금이었다. 결국 각지에서 반란이 잇따랐고, 무제는 재위 약 10년 만에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남조 특유의 참혹한 종실 항쟁이었다. 황제를 옹립했다가는 금세 폐위하고, 호위하며 데려가다 목숨을 거두는 일이 반복되는 아수라장이었다.
종실 학살과 폭군의 시대
황실 소(蕭)씨는 친족 간의 갈등이 극심했다. 특히 제5대 명제(明帝) 소란(蕭鸞)의 시대에는 고황제와 무제의 자손을 비롯해 종실 20여 명이 테러 정치 속에 몰살당했다. 명제는 황위를 빼앗은 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황족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 것이다.
그런데 명제가 숙청한 대상이 적어도 황족에 한정된 것이었다면, 그의 아들 동혼후(東昏侯) 소보권(蕭寶卷)은 그 대상을 천하만민으로까지 확장했다. 신하든 백성이든 눈엣가시로 보이는 자는 가차 없이 없앴고, '악황(惡皇)', '살인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그 추태를 생각하면 당시 백성들의 고통이 짐작이 간다.
로마 제국에서도 황제가 미쳐 날뛰는 일이 종종 있었지만, 중국 남조에서는 황제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굴어버리는 일이 거의 매 왕조마다 반복되었다.
양나라의 탄생, 그리고 23년의 종언
이런 흐름 속에서 황실과 같은 뿌리를 둔 소씨 일문의 장군 소연(蕭衍)이 마침내 기립했다. 그는 명제의 아들이자 동혼후의 동생인 소보융(蕭寶融)을 화제(和帝)로 옹립해 동혼후 정권을 무너뜨렸고, 이윽고 화제에게 선양을 받아 502년 새 왕조 량(梁)을 세웠다. 물론 선양이라는 이름의 찬탈이었고, 퇴위한 화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살해당했다.
흥미롭게도 남제를 세운 소씨와 남제를 무너뜨린 소연은 같은 소(蕭)씨 일문이었다. 그래서일까, 뒤이은 량(梁)나라의 역사도 남제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참혹한 양상을 띠게 된다.
결국 남제는 479년 소도성이 건국하여 502년 소연에게 멸망하기까지, 불과 23년의 역사를 가진 초단명 왕조로 기록되었다. 헤이세이 시대(31년)보다도 짧은 수명이다. 남조의 혼란한 정치 상황이 얼마나 극단적이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