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역사에서 삼국시대의 오(吳)를 시작으로 동진(東晉), 송(宋), 제(齊), 양(梁), 진(陳)까지, 건도를 난징(建康)에 둔 여섯 왕조를 통틀어 '육조(六朝)'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는 왕희지(王羲之)의 『난정서(蘭亭序)』가 탄생할 만큼 문화적으로 크게 꽃피웠지만, 정치적으로는 혼란이 거듭되면서 명운이 짧은 왕조들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그 육조의 마지막 왕조인 '진(陳)'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주대장군을 무찌른 영웅이 세운 나라
진은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기인(奇人)인 '우주대장군' 후경(侯景)을 토벌한 무장 진패선(陳霸先)이 세운 나라입니다.
그러나 개국황제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황제가 되기 전에는 후경을 격파하는 영웅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함께 군을 지휘하던 장군 왕승변(王僧辯)과 갈등을 빚다 결국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양나라의 몰락과 진의 건국
후경의 난으로 양나라는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고, 황족 소방지(蕭方智)는 선양(禪讓)을 강요당해 제위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나라가 바로 육조의 마지막 왕조, 진입니다.
진의 영토는 양나라 때보다 더 좁아졌습니다. 양나라 황실의 일부가 잔존해 서량(西梁) 같은 나라가 별도로 세워지는 등, 국가의 기반은 상당히 취약했습니다.
이어지는 요절과 가문의 내분
무제(武帝) 진패선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사망하고, 조카인 문제(文帝)가 2대 황제로 즉위합니다. 문제는 북방의 침공을 물리치고 반대 세력을 차례차례 진압하는 등 남조(南朝) 황제치고는 드물게 유능했지만, 안타깝게도 요절하고 맙니다.
그 후 육조의 '가업'이라 할 만한 가문의 내분이 일어나, 3대 황제는 즉위 2년 만에 숙부에게 폐위됩니다.
다행히 이 숙부, 곧 선제(宣帝)는 그리 나쁜 황제가 아니었습니다. 북제(北齊)를 공격해 한때 화북의 땅을 빼앗는 데 성공했지만, 북제를 대신해 중원의 패자가 된 북주(北周)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중국 최악의 암군, 진숙보
선제가 죽자 아들 진숙보(陳叔寶)가 제위에 올랐는데, 이 사람은 중국 역사상 최악의 암군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정치는 엉망으로 방치한 채 매일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결국 진은 북주를 멸망시킨 수(隋)의 문제(文帝) 양견(楊堅)에 의해 손쉽게 무너지고 맙니다.
멸망으로 끝난 진나라의 운명
진은 전왕조인 양나라보다 국력과 영토가 모두 작았습니다. 삼국시대 촉(蜀)에 해당하는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상실한 채 건국되었을 뿐 아니라, 강남의 땅마저 우주대장군 후경의 난으로 크게 황폐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끝내 회복하지 못했고, 마지막 황제마저 암군이었던 데다 수나라에는 양견이라는 걸출한 인재가 있었기에 진은 쉽게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천시(天時)와 지리(地利), 인화(人和)가 모두 갖추어져야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은 이 세 가지 어느 하나도 갖추지 못한 나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