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세키가하라 전투란? 천하를 가른 결전의 배경과 흐름 총정리

오다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주군이었던 노부나가의 가신들마저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여 화려하게 천하 통일을 이루어냈습니다.

천하를 안정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히데요시는 정권 내에 가로(家老)와 봉행(奉行) 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중 중신들의 수장격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주로 군사 업무를 담당했고, 봉행을 총괄하는 입장에 있던 이시다 미쓰나리는 행정 실무를 맡아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원래 이에야스는 노부나가와 동맹을 맺고 있던 인물입니다. 한때 노부나가의 가신에 불과했던 히데요시가 천하를 손에 넣은 것에 대해, 이에야스의 마음속에는 어딘가 개운치 못한 감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노부나가 다음은 자신이 천하를 가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그러나 노부나가의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것은 히데요시 쪽이 한 수 위였습니다. 이에야스는 천하 통일과 백성들의 태평성대를 위해 일단 히데요시 진영에 굴복하기로 합니다.

도요토미 정권 아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을 돕기 위해 이에야스는 오다와라 정벌과 규슈 정벌 등 여러 전역에서 히데요시를 지원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천하 통일을 이룬 히데요시는 일본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시선을 이웃 나라 조선으로 돌립니다.

주변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영토 확장에만 몰두하는 히데요시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 이에야스는, 새로운 국가 건설을 향한 포부를 더욱 굳건히 다져갑니다.

* 참고로 조선 출병은 장차 명나라 정복을 겨냥한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이웃 나라 조선으로 군대를 파병했지만 뜻대로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봉행으로서 내정을 담당하던 이시다 미쓰나리였습니다. 조선 출병으로 부담이 커질수록, 주군 히데요시에게서 손을 떼려는 세력과 끝까지 도요토미 집권을 지키려는 세력 사이의 균열은 더욱 깊어졌고, 세키가하라 전투의 씨앗은 이미 이때 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시다 미쓰나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권력 다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도요토미 정권 내부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원래 자식 얻기 어려웠던 히데요시는 늦게 얻은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무척이나 예애했지만, 히데요시가 사망할 당시 히데요리는 겨우 5살에 불과했습니다.

5살 아이로는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칠 수 없습니다. 이에 히데요리의 후견인 자리를 차지해 권력을 잡으려는 이에야스와, 일찍부터 그 야심을 간파한 미쓰나리 사이에 권력 다툼이 시작됩니다.

이에야스는 정략결혼 등을 활용해 히데요시의 옛 가신들을 하나둘씩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며 세력을 착실히 키워갑니다. 이에 맞서 미쓰나리 역시 친우인 오타니 요시쓰구를 비롯해 봉행들과 오미(近江) 출신 동료들을 규합해 맞섭니다.

한편 미쓰나리는 히데요시 휘하 무장들 중에서도 손꼽히던 가토 기요마사와 후쿠시마 마사노리 등으로부터 좋은 시선을 받지 못했습니다. 생전의 히데요시는 무가파(武斷派)와 봉행파가 충돌할 때마다 직접 중재해 주었지만, 그가 죽자 두 파벌의 관계는 완전히 삐걱거렸고, 서로 마주보기만 해도 불편할 정도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반(反)미쓰나리 성향의 가토 기요마사 등 무단파 장수들이 미쓰나리의 저택을 습격해 암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를 두려워한 미쓰나리는 이에야스의 저택으로 피신했고, 이에야스의 중신 혼다 다다카쓰가 그를 보필해 이에야스의 침소까지 모셔갔습니다.

이에야스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두 사람을 불러 무인의 본분을 일깨워주며 직접 중재에 나섭니다. 그 결과 기요마사에게는 자기 영지로 물러날 것을 명했고, 소동의 책임을 물은 미쓰나리에게는 본거지 사와야마(佐和山)로 은거할 것을 명했습니다. 사실상 실각이나 다름없는 처분을 받은 미쓰나리는 절망 속에 신음하게 됩니다.

바로 그 무렵, 이에야스는 북방의 우에스기 가문이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대군을 이끌고 토벌에 나섭니다. 이 소식을 접한 미쓰나리는 이것이야말로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합니다. 정면에서는 우에스기군이, 배후에서는 미쓰나리의 본대가 이에야스를 협공해 격파한다는 작전이었죠.

이렇게 미쓰나리를 중심으로 결집한 서군과 이에야스가 이끄는 동군은 기후현 세키가하라정에서 격돌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키가하라 전투입니다. '천하 분쟁의 결전'이라고도 불린 이 대결은 단 반나절 만에 승부가 났으며, 패배한 미쓰나리는 동군 무장에게 붙잡혀 교토 로쿠조가와라(六条河原)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양군 합계 약 20만 병력이 동원된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전투였던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1603년 마침내 에도 막부를 개창하며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