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히미코와 위(魏)나라의 관계 – 야마타이국이 조공을 보낸 진짜 이유

앞서 야마타이국(邪馬台国)에 관한 글을 작성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히미코가 왜 위나라에 조공을 바쳤는지, 그 이유를 좀 더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철을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 남부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로 조공을 보내게 된 배경은 중국 대륙과 한반도의 정세를 통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히미코와 위(魏)나라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히미코 시대의 중국 대륙 정세

히미코가 활동한 시기, 즉 248년 이전의 중국 상황부터 먼저 짚어보겠습니다.

239년(『위지 왜인전』에서는 238년으로 기록) 히미코는 난슈미(難升米)라는 사신과 부사 우시리(牛利)를 대방군(帶方郡)으로 파견했습니다.

237년 무렵의 지도를 보면, 대방군은 옛 '연(燕)' 자리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북쪽에는 낙랑군(樂浪郡), 남쪽에는 대방군이 위치해 있었습니다.

대방군은 위나라의 직할 통치 아래 있던 곳으로, 한반도 중서부의 낙랑군 남쪽에 자리했으며 204년부터 313년까지 존속했습니다. 일종의 식민지와 같은 성격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대방군이라 불리는 이 땅은 원래 동한 시대 요동군 태수였던 공손도(公孫度)가 독립한 뒤 그 가문이 통치하던 영역 중 하나였습니다. 조조(曹操)가 위나라의 기반을 닦았고, 실질적으로는 공손강(公孫康)이 조조로부터 관직을 받으면서 이 지역이 위나라 체제에 편입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삼국시대는 언제 시작되었나

조조라고 하면 흔히 삼국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 조조는 엄밀한 의미의 삼국시대에 살지 않았습니다.

184년 농민 반란인 황건적의 난(黃巾賊之亂)으로 시작된 혼란의 시대였지만, 초기에는 군웅할거(群雄割據)의 시대였습니다. 일찍부터 한 황제를 손아귀에 넣은 조조가 중원(황하 유역의 화북 평원)을 장악하면서, 이후 위나라가 우위에 서게 됩니다.

한편 장강 유역에 세워진 오(吳)와 익주(益州)에 건국된 촉(蜀)도 거의 같은 시기에 세력을 키워 나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연의』에서는 위의 조조, 오의 손권, 촉의 유비가 이야기의 중심이기 때문에 혼동하기 쉽지만, 실제로 삼국시대에 들어선 것은 황건적의 난으로부터 약 36년 후였습니다. 조조가 죽고 아들 조비(曹丕)가 뒤를 이은 뒤,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가 선양하면서 비로소 삼국시대가 개막한 것입니다.

239년, 한반도에서 벌어진 일들

삼국시대 한복판인 239년에 히미코는 사신을 파견했는데, 바로 그 무렵 한반도에서는 커다란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238년, 요동군 태수 공손연(公孫淵)이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독립을 계획하자, 위나라는 사마의(司馬懿)를 파견했고 결국 공손연은 처형되었습니다. 이로써 요동·대방 일대의 공손씨 세력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히미코는 그 이전에도 사신을 보내려 했으나, 연(燕, 공손씨 정권)에게 길이 막혔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민감한 시점에 사신을 파견한 것을 보면, 히미코 측은 대륙의 정세를 상당 부분 파악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정보는 한반도 남부에 거류지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왜인들을 통해 수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인 242년, 대방군과 인접한 고구려가 위나라 영토를 침공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됩니다. 위나라는 244년부터 관구검(毌丘儉)을 보내 고구려를 대대적으로 토벌하는 등, 한반도 북부의 긴장이 한층 고조되었습니다.

위나라가 왜국에 특별한 우대를 한 이유

고구려, 오(吳), 대방군, 그리고 일본 열도의 위치 관계를 보면, 이 세 세력 모두 왜국(야마타이) 입장에서 교역과 외교를 통해 접근하기 좋은,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쉬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지정학적 가치 때문에 위나라는 왜국에 특별한 우대를 베풀었습니다. 통상 인장은 동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지만('한왕 노국왕 금인'처럼 금인은 매우 드문 예외), 위나라는 히미코에게 금인을 하사하며 파격적인 대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히미코는 이를 통해 위나라의 공식 승인을 받고, 한반도 남부에서의 발언권과 철자원 확보라는 실익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