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압도적 열세였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일본은 어떻게 승리했는가?

메이지 유신 이후 20여 년간 부국강병을 통해 급속히 근대화와 국제화를 추진해 온 일본에게, 주변 국가들과의 우호적인 관계 구축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의 외교적 처지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조선반도를 둘러싸고 이권 경쟁을 벌이던 열강, 그리고 북방의 광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남하를 추진하던 러시아까지, 주변국들은 저마다 세력 확장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본은 근대 국가를 건설한 지 채 40년이 되지 않아 두 차례의 대규모 근대전쟁을 겪게 됩니다. 바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입니다.

일본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두 전쟁은 증기 기관으로 항해하는 전함과 속사포가 실전에 배치된 최초의 전쟁이라는 점에서 군사사적으로 매우 획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섬나라 일본이 동서의 양대 강국을 차례로 격파한 이 전쟁들에서 개전 초기 국제사회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일본에게 불리했다는 사실입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일본이 승리한 이유

청일전쟁 — 조직력의 차이가 만든 승리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는 서서히 기울고 있었지만, 여전히 동양 최대의 강국으로서 병력 규모만큼은 유럽 열강에 필적할 수준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이 이 강대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일본군의 조직과 지휘 계통이 간결하고 최신식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반면 청나라의 군사 조직은 광대한 대륙을 통치하기 위해 지방군의 독립성을 인정했고, 지휘 계통이 통일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관료 정치의 부패로 군의 사기 또한 극도로 저하되어 있어, 싸우지도 않고 후퇴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요컨대 청나라는 스스로 패배의 씨앗을 뿌려둔 상태였던 것입니다.

러일전쟁 — 동맹과 무기 현대화의 힘

한편 러일전쟁의 경우는 조금 다른 배경이 작용합니다.

청일전쟁의 승리 이후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크게 높였습니다. 청나라와 조선의 약체화를 포착한 러시아가 영토 확장에 나서자, 이에 맞선 영국의 극동 정책과 일본 측의 외교적 노력이 결합되어 군사 협력을 포함한 일본 최초의 대등한 조약인 영일동맹이 성립됩니다.

러일전쟁의 규모는 청일전쟁보다 훨씬 컸고, 전쟁 비용 역시 천문학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면 청일전쟁의 전비가 약 2억 3,000만 엔인 반면, 러일전쟁의 전비는 15억 엔을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쟁 비용이 급증한 배경에는 육·해군의 근대화가 있습니다. 특히 해군은 군함 건조 선진국인 영국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당시 세계 최정상급이었던 최신예 전함과 장갑순양함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청나라의 북양함대를 압도하며 전장을 장악했듯이, 러일전쟁에서도 개전 초반에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격파하는 것이 승부의 갈림길이었습니다.

사실상 해군력을 잃은 러시아는 본국의 발틱 함대를 극동으로 소환하지만, 영국의 방해로 항해에만 반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결국 극동 도착 시점에는 이미 병력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었고, 일본은 이들을 대파하는 데 성공합니다.

요컨대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지리적 이점과 최신예 무기·함정이라는 물적 우위에 더해, 청일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 정부의 부패와 약체화가 초래한 내부 혼란이 한몫했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숫자로 보는 두 근대전쟁

청일전쟁 군사력 비교

구분일본청나라
육군 병력약 24만 명약 63만 명
해군 전력28척 (약 6만 톤)82척 (약 8만 5,000톤)

표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은 상대방의 3분의 1 수준의 병력밖에 갖추지 못했지만, 상대의 내부 분열과 자멸적인 부패 덕분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러일전쟁 국력 비교

구분일본러시아
영토37만㎢약 2,400만㎢
인구약 4,600만 명약 1억 2,000만 명
재정 수입약 2억 9,000만 엔약 20억 8,000만 엔
상비군약 20만 명약 300만 명
투입 병력약 100만 명약 100만 명
전쟁 비용15억 엔22억 엔
해군력약 23만 톤약 60만 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누가 봐도 일본에게는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국운을 건 승부수를 던지기로 결심했고, 끝내 승리를 쟁취해 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