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플라자 합의와 일본 버블 경제: 초호황의 탄생과 붕괴

변동환율제로 이행하면서 환율이 짧은 기간에 크게 요동치자, 선진국들이 환율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일본은 대미 수출이 급증하면서 세계 최대의 무역흑자국으로 떠올랐습니다. 경영 합리화와 산업구조 전환을 통해 국제경쟁력을 크게 강화한 일본은 서방 각국에 공세적으로 수출을 밀어붙였고, 이에 따라 무역 마찰도 점점 심각해졌습니다.

플라자 합의(Plaza Accord)

1981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은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 강화를 추진했습니다. 그는 기존 정책과 달리 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를 내세우며 정부 지출을 줄이고 감세와 규제 완화를 단행했는데, 이러한 정책 노선은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라고 불립니다.

그러나 군비 확장으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미국이 고금리 정책을 채택하면서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수출 경쟁력은 약화되었습니다. 결국 1980년대 미국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동시에 진행되는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에 시달렸고, 보호무역주의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보호주의 흐름에 위기를 느낀 선진국들은 회담을 개최했습니다. G5(선진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가 열렸고, 일본·미국·영국·프랑스·서독 5개국이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였습니다.

이 회의의 의제는 달러의 과도한 강세를 시정하기 위해 일본·미국·독일의 통화 당국이 협조하여 달러를 매도하는 시장 개입에 합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플라자 합의입니다.

그 결과 달러 가치가 급락했고, 환율은 1달러=240엔에서 1달러=120엔 수준까지 엔화가 절상되었습니다. 이 시기 일본 기업들은 미국 기업과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매입했으며, 일본의 대외 직접투자는 1999년까지 막대한 규모로 이어졌습니다.

급격한 엔고로 수출 주도 성장하던 일본 경제는 1986년 '엔고 불황'에 빠졌습니다.

일부 일본 기업들은 강한 엔화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저임금의 동아시아로 생산기지를 옮겨 현지 생산을 확대하고 무역 마찰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 제조업은 점차 쇠퇴했습니다.

일본의 무역 구조는 에너지·원자재 수입에 더해 아시아산 저가 제품 수입이 늘어나며 큰 전환기를 맞았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공공사업 확대, 수입 확대, 무역흑자 축소 등 내수 확대 정책에 맞춰 내수 주도 경제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1987년에는 이탈리아와 캐나다가 포함된 G7 회의가 프랑스에서 열렸습니다. 여기서 무역흑자국의 금리를 인하하고 미국의 금리를 인상하기로 합의하여, 달러 가치 하락을 멈추기 위한 루브르 합의(Louvre Accord)가 체결되었습니다.

일본은행은 금융완화 정책에 착수하여 1987년 공식 할인율을 사상 최저 수준인 2.5%까지 끌어내렸습니다. 이렇게 환율이 안정되면서 발생한 잉여 자금은 주식과 부동산 투기로 흘러들었고, 내수 주도의 버블 경제(1987~1991)라 불리는 초호황 국면이 시작되었습니다.

버블 경제란?

1986~1991년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라고 불리는 초호황이 계속되었습니다.

버블 경제란 실체 이상으로 거품처럼 부풀어 오른 경제 상태를 말합니다. 일본의 지가는 원래 가치에서 크게 벗어난 수준까지 치솟았고, 개인과 기업이 보유한 자산 가치도 덩달아 급등했습니다. 사람들은 명품, 고급 승용차, 골프회원권, 미술품, 리조트 콘도미니엄을 앞다투어 사들였습니다.

반면 엔화 절상으로 수입품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에 도매물가와 소비자물가는 안정세를 유지했습니다.

버블로 흘러간 과정

미국 무역적자 확대
↓
1985년 플라자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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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고 불황
↓
저금리 정책(금융완화) — 공식 할인율 대폭 인하
↓
자금 조달이 쉬워지며 토지·주식에 투자 집중
↓
버블 경제로

버블 경제의 붕괴

거품은 언젠가 꺼지기 마련입니다. 버블 경제에도 붕괴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가 시행되었고, 걸프전으로 수입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일본은행이 공식 할인율을 인상했습니다.

그 결과 은행에서 돈을 빌려 토지와 주식을 사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주가 하락과 지가 하락이 나타났습니다. 1990년 2월 주가가 폭락했고, 이어 1991년 3월부터 지가도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주가가 한번 떨어지면 손해 볼 것을 우려한 사람들이 서둘러 주식을 매도하고, 이것이 다시 추가 하락을 부르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결국 버블 붕괴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1989년 12월~1992년 8월 사이 주가 하락률은 무려 63.3%에 달했습니다.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은 1991년~1993년 10월까지 계속되었지만, 다행히 실질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지는 않았습니다.

버블 붕괴의 흐름

버블 경제(1986~1991)
↓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
공식 할인율 인상
지가세 도입

↓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며
토지·주식 매수자 감소
(지가·주가 하락)

↓
버블 붕괴로…

이렇듯 유례없던 초호황 버블 경제는 막을 내렸고, 일본은 '헤이세이 불황'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의 시대로 들어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