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랫동안 돌로 만든 뗀석기를 이용해 사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인류 역사상 획기적인 발명품인 토기가 등장하면서 구석기 시대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게 되고, 인류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조몬(縄文) 문화와 야요이(弥生) 문화는 바로 이 토기를 사용한 문화로 유명한데요. 이번 글에서는 두 시대의 차이점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 차이점 한눈에 보기
먼저 두 시대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조몬 시대 ⇒ 약 15,000년 전부터 약 2,300년 전까지 약 1만 년에 걸친 시대로, 끈무늬가 새겨진 두껍고 흑갈색의 ‘조몬 토기’가 특징입니다. 사냥과 채집 중심의 생활을 영위했습니다.
야요이 시대 ⇒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경까지 약 600년간 지속된 시대로, 직선 등 소박한 무늬가 새겨진 얇고 연갈색의 ‘야요이 토기’가 특징입니다. 주로 벼농사 중심의 생활을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배우듯이 두 시대는 토기의 특징과 생활 방식을 기준으로 구분되는데요. 그렇다면 각 시대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조몬 시대란?
조몬 시대는 약 15,000년 전부터 약 2,300년 전까지로 알려져 있지만, 여러 학설이 있으며 지역에 따른 차이도 존재합니다. 그 이전 시대는 구석기 시대로, 지구 전체의 기온이 크게 떨어진 빙하기였다고 전해집니다.
빙하기가 끝나고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인류의 생활은 급격하게 변화했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주로 매머드 같은 대형 동물을 먹이로 삼았지만, 온난화로 인해 사냥감이 작아지면서 사냥 방법과 도구도 함께 바뀌게 됩니다.
조몬 시대의 주거
조몬 시대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는 ‘수혈식 주거(竪穴住居)’입니다. 땅을 파고 중앙에 기둥을 세운 뒤 나무를 연결해 골조를 만들고, 그 위에 갈대 같은 식물로 지붕을 덮은 집입니다. 구멍을 깊게 팔수록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고 합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사냥을 위해 임시 거처를 옮겨 다녔지만, 수혈식 주거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한곳에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조몬 시대의 도구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온난해지자 식물이 풍부해졌습니다. 또한 그동안 사냥하던 대형 동물들이 사라지고 소형 동물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사냥 도구에도 변화가 일어납니다.
민첩한 소형 동물을 잡기 위해 창보다 유리한 활과 화살이 탄생했습니다. 또한 돌을 부딪쳐 만들던 뗀석기에서 벗어나 돌을 갈아 만든 마제석기, 동물의 뼈와 뿔을 가공한 골각기(骨角器)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골각기는 낚싯바늘 모양으로 가공되어 강에서 낚시하는 데 쓰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몬 시대의 의복
일부 골각기는 재봉틀 바늘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이용해 삼 같은 식물 섬유로 옷을 만들었습니다.
‘관두의(貫頭衣)’라고 불리는 이 옷은 천에 구멍을 뚫고 거기서 머리를 내밀어 입는 간단한 형태였다고 합니다. 또한 사냥으로 잡은 동물의 가죽도 옷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조몬 시대의 식생활
조몬 시대 사람들은 상당한 미식가였습니다. 바다, 산, 강이 주는 풍요로운 혜택 속에서 계절마다 다양한 동식물을 즐겼고, 도토리나 들깨로 가공식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조몬 시대 후기에는 일부 지역에서 벼농사가 전래되었지만, 아직 쌀이 주식이 되기에는 이르렀습니다.
조몬 토기
조몬 시대와 야요이 시대의 큰 특징인 토기 중, 조몬 시대에 사용된 저온에서 구운 두꺼운 토기를 ‘조몬 토기’라고 부릅니다. 대부분 흑갈색을 띠며, 밧줄을 굴려서 붙인 끈무늬(조몬문)가 특징입니다. 끈무늬뿐 아니라 입체적인 장식이 더해진 토기도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토기를 이용해 도토리 같은 견과류를 껍질을 까거나 조리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조몬 시대의 문화
조몬 유적에서는 많은 토우(土偶)가 출토됩니다. 토우는 여성을 형상화한 것이 많은데, 몸의 일부가 부러진 상태로 출토되는 경우가 많아 이것이 상처를 치유하는 일종의 주술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조몬 시대 사람들의 쓰레기 처리장*인 ‘패총(貝塚)’이 발견되는데, 현재까지 약 2,500곳에 달합니다. 패총에서는 조개껍데기뿐 아니라 토기, 골각기, 석기 등도 함께 출토되었습니다.
조몬 시대 사람들에게 매장 문화도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당시에는 손발을 구부린 채 웅크린 자세로 묻는 ‘굴신장(屈葬)’ 방식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 여러 학설이 존재합니다.
야요이 시대란?
반면 야요이 시대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기원후 300년경까지 약 600년간을 가리키며, 기원전 800년경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야요이 시대의 특징은 조몬 시대의 사냥·채집 중심 생활에서 벼농사가 생활의 중심이 되면서 생활 방식이 크게 변화했다는 점입니다. 마을 안에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지도자가 탄생하면서 신분의 차이도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야요이 시대의 주거와 건축물
야요이 시대의 주거 환경은 조몬 시대와 마찬가지로 수혈식 주거에서 생활했습니다.
새로운 건축물로는 곡물 등을 저장하는 ‘고상식 창고(高床倉庫)’가 등장했습니다. 또한 주거와 창고 외에도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 북쪽 안호(內郭)의 주제(主祭殿)처럼 마을 중심에 큰 제사 건축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건축물들은 토기에 그림으로 남아 있는데, 이 그림들을 통해 야요이 시대에는 높은 건축물이 신성한 것이라는 관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야요이 시대의 도구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농사에 사용되는 새로운 도구들이 탄생했습니다.
흙을 일구는 괭이와 쟁기, 벼 이삭을 수확할 때 쓰는 낫, 그리고 사진의 ‘석겸(石鎌)’, 수확한 벼의 이삭을 타작하는 데 쓰인 절구와 공이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오늘날 벼농사로 이어지는 농기구의 원형은 이미 야요이 시대에 갖춰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야요이 시대 초기까지는 농기구 대부분이 목재로 만들어졌지만, 중기 이후 사가현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철제 농기구가 출토된 것처럼 철제로 바뀌었습니다. 철은 한반도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며, 철제 농기구의 등장으로 작업 효율이 크게 향상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야요이 시대의 의복
신분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야요이 시대에는 의복에서도 차이가 생겼습니다.
평민의 옷은 조몬 시대와 같았지만, 상위 계급의 지도자들은 소매 구조가 다른 옷을 입었다고 전해집니다.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는 견직물(비단)이 출토되었는데, 이것이 상위 계급의 의복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단은 조개 분비물이나 식물에서 얻은 보라색 염료로 물들었기 때문에, 마을의 지도자는 붉은색이나 보라색으로 물들인 소매 달린 옷을 입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야요이 시대의 식생활
벼농사가 시작된 야요이 시대에는 쌀이 주식이 되었고, 밀, 팥, 기장 같은 곡물도 재배되었습니다. 먹는 방식은 토기에 쌀을 조려 죽처럼 먹는 형태였으며, 이 죽을 떠먹기 위한 숟가락과 비슷한 도구가 야요이 시대 유적에서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쌀 외의 식품으로는 사냥을 통해 고기와 멧돼지를 잡아 먹었고, 조개와 생선을 단백질 공급원으로 삼았습니다. 또한 개와 멧돼지를 식용으로 사육했다는 것도 알려져 있습니다.
개를 먹는 풍습은 중국이나 한반도의 습관에서 전래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야요이 토기
야요이 시대에도 조몬 시대와 마찬가지로 ‘야요이 토기’라 불리는 토기를 사용했습니다.
연갈색이 특징이며, 조몬 토기처럼 화려한 장식 없이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입니다. 두께는 불과 몇 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고온에서 구워 매우 튼튼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입니다. 용도에 따라 항아리형, 접시형 등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조몬 토기보다 더 정교하고 실용적이었다는 것이 알려져 있습니다.
야요이 시대의 문화
벼농사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기 시작했고, 마을은 곧 ‘국(國)’으로 발전하며 지도자가 탄생했습니다. 야요이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여러 국들은 영토를 넓히기 위해 다투기 시작했는데, 이 시대에 등장한 히미코(卑彌呼)가 이끈 야마타이국(邪馬台国)도 이러한 국들의 연합체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사회 조직과 계급의 존재는 야요이 시대의 무덤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거울과 동창(銅鐃) 같은 부장품이 가득한 왕의 무덤도 발견되었습니다.
야요이 시대 후기에는 흙과 돌을 쌓아 언덕처럼 만든 ‘분구묘(墳丘墓)’가 나타나며, 당시 지도자들이 그곳에 잠들어 있습니다.
또한 야요이 시대에는 굴신장에 의한 매장이 줄어들었습니다. 조몬 시대 후기부터 서일본에서는 몸을 쭉 펴고 누운 형태로 묻는 방식이 퍼졌는데, 이 매장 방식을 ‘신장묘(伸展葬)’라고 부릅니다.
신장묘이라고 해도 반듯이 눕는지, 옆으로 눕는지, 팔을 내리는지 등 정해진 형식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땅에 직접 구덩이를 파던 방식에서 벗어나, 파낸 흙속에 나무와 돌로 오늘날 관처럼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누운 듯이 묻는 방식이 늘어났습니다.
매장 장소도 생활 공간에서 조금 떨어진 묘지 같은 곳에 묻히게 되면서, 생활 공간과 매장 공간이 분리되었습니다.
야요이 시대와 조몬 시대 비교표
| 조몬 시대 | 야요이 시대 | |
| 주거 | 수혈식 주거 | 수혈식 주거 |
| 건축물 | 패총 (건축물은 아님...) | 창고와 제사 건물이 고상식으로... |
| 도구 | 마제석기와 골각기 | 벼농사 관련 석겸 등 사용... |
| 의복 | 관두의라 불리는 옷 | 민중은 견직물, 지도자는 견직물 착용 |
| 식문화 | 사냥과 채집 | 쌀을 주식으로 생선과 고기 섭취 |
| 토기 | 저온에서 구운 두꺼운 조몬 토기 | 고온에서 구운 얇고 장식이 적은 야요이 토기 |
| 매장 방식 | 굴신장 | 신장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