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성(城)'이라고 하면 우리는 곧 눈에 띄는 천수각(天守閣)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한자어 사전에서 '성'을 찾아보면 '성이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높은 건축물'이라고 되어 있어, 결국 '성 = 천수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대표적 국어사전인 광사전(広辞苑)에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든 군사적 구조물'이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즉 천수각뿐만 아니라 해자·석벽·울타리 등의 구조물로 둘러싸인 군사적 목적의 공간 전체를 성으로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히메지성처럼 웅장한 천수각이 남아 있어도 더 이상 군사적 의미를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성'이 아니라 '성터(城跡)'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또한 에도 시대의 성들은 막부와 번정(藩政)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 시청사나 관공서와 같은 행정 기능을 겸했으며, 동시에 무사 계급의 권위를 상징하는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전국시대 말기까지 천수각은 없었다
우리는 흔히 '일본의 성 = 천수각'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본의 성에 천수각이 세워진 것은 전국시대 말기의 일입니다. 무장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의 저택인 츠츠지가사키관(躑躅ヶ崎館)조차 우리가 아는 근세 성곽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는 본격적인 천수각을 처음 갖춘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아즈치성(安土城)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천수각이라는 이름은 주군(主君)을 뜻하는 '텐슈(天主)'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함께, 기독교 가톨릭 교회당을 본떴다는 설도 전해집니다. 이 아즈치성을 시작으로 에도 시대 초기까지 '근세 성곽 붐'이 일어나 수많은 천수각이 세워졌습니다.
천수각은 왜 지었을까?
천수각을 갖춘 성들 중 다수는 성내 최고 지점에 천수각을 세웠습니다.
기능적으로는 성내 전체를 조망하기에 훌륭한 전망탑이었지만, 대포와 같은 공격의 표적이 되기 쉬워 방어 측면에서는 오히려 불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세 성곽 붐이 지난 후에는 천수각이 새로 세워지지 않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권력자들이 성에 천수각을 지은 진짜 이유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성주의 가신들과 영지 백성들 역시 웅장한 천수각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실제 아즈치성은 군사적인 인상이 크지 않았고, 성 아래에서 잘 보이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지어졌습니다.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그 지역의 랜드마크였던 셈입니다.
이러한 성들은 메이지 6년(1873년)의 폐성령(廃城令)으로 폐성되었고, 건물들이 철거된 자리에는 관공서와 학교가 들어섰으며, 부지는 공원이나 신사로 활용되었습니다. 히코네성과 이누야마성 등 일부 성에서는 옛 성주가 그곳을 저택으로 삼아 살기도 했습니다.
폐성령 이후 많은 사람들이 헐리지 않고 남은 천수각을 구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쇼와 시대까지 이어졌고, 50개 이상의 천수각이 재건되어 오늘날에도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성은 과거에도, 그리고 지금도 지역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수각은 권력의 상징! 최대의 천수각은 에도성?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천수각은 히메지성으로, 높이 약 31m, 1층 규모는 약 27×20m입니다. 그 뒤를 마츠모토성, 마츠에성, 고치성이 잇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실된 천수각까지 포함하면 역대 최대·최고의 천수각은 단연 에도성이었습니다. 그 규모는 히메지성보다 높이와 크기가 1.3배 이상에 달했습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에도 막부가 재건한 오사카성으로, 에도성보다 약간 작은 규모였습니다.
결국 천수각의 크기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대하다고 알려진 아즈치성도 당시 기준으로는 컸겠지만, 당대의 건축 기술로 추정해볼 때 히메지성보다는 약간 작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히데요시가 지은 오사카성도 아즈치성보다 컸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에도 시대에 소실된 후 쇼와 시대에 재건되어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습니다.
에도성이 역대 최고의 천수각이 된 것은, 시대가 거듭될수록 건축 기술상 위층이 점점 작아지는 경향 때문인 것으로 해석됩니다.
영주는 천수각에 살지 않았다?
근세의 성주, 즉 영주는 실제로 천수각이 아니라 어전(御殿)이라 불리는 대형 단층 건물에서 생활했습니다. 어전에는 거실, 부엌, 영주와 면담하는 회견소(対面所) 등 다양한 용도의 넓은 홀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어전은 행정 관청 역할도 겸했기 때문에 상석 관리들과 하급 관리들이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현존하는 어전으로는 니조성, 카와고에성, 고치성 등이 있는데, 천수각만큼 높지는 않지만 내부는 매우 화려하며, 서원조(書院造) 건축과 천장화, 장벽화(襖絵) 등 무사 문화의 정수를 집약한 건축물입니다. 많은 어전에는 아름다운 정원도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에도성에도 쇼군이 머무는 혼마루 어전이 있었고, 그 뒤편에는 쇼군의 처가와 측실, 그리고 이들을 돌보는 여인들이 사는 '오오쿠(大奥)'라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오오쿠는 에도성 특유의 시설이지만, 각 번의 어전에도 영주를 돌보는 여인들이 거처했다고 합니다.
천수각 외의 성곽 건축물
근세의 성에는 작은 천수각처럼 보이는 망루(櫓·야구라)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망루는 성의 방어를 담당하는 건물로, 근세 성곽에는 반드시 여러 개의 망루가 세워졌으며, 대규모 성에서는 수십 개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스미 망루(隅櫓·모퉁이 망루)
망루 중 구루와(曲輪)의 모퉁이에 세워진 망루를 '스미 망루'라고 하며, 방향과 위치에 따라 24방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남동쪽(잣츠미·辰巳)에 위치한 망루는 '잣츠미 망루'로 불렸습니다.
구조는 대체로 2~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에도 시대에는 천수각의 신축이 엄격히 제한되었기 때문에 때로는 천수각 대신 성의 상징으로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다몬 망루(多門櫓)
망루 사이를 장랑(長屋)처럼 길고 좁게 이어 세운 망루를 '다몬 망루'라고 합니다. 이름의 유래는 센고쿠 무장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세운 다몬성(多聞城)에서 따왔다고 전해집니다.
내부에 병사들을 배치할 수 있어 성의 방벽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츠키미 망루(月見櫓·월견 망루)
츠키미 망루는 달구경을 목적으로 세워진 망루로, 다른 망루에 비해 개방적인 구조와 넓은 개구부가 특징입니다.
현존하는 예로는 오카야마성과 마츠모토성이 있습니다. 가가와현 다카마츠성의 츠키미 망루는 '차쿠미 망루(着見櫓)'라고도 불리며, 바다에서 들어오는 선박을 감시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망루는 원래 '矢倉(화살 창고)'라고 표기되었듯이, 전투 중 화살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는 건물이었습니다. 따라서 근세 성곽에는 많은 망루가 세워졌고, 평시에는 무기, 소금, 된장, 장작, 숯 등 각종 물자의 저장고로도 활용되었습니다.
히메지성에는 천수각 근처에 소금 창고가 남아 있고, 오사카성에는 화약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습니다. 또한 각 성에는 연공미(年貢米)를 보관하는 미곡창고도 갖추어져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