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일본 성과 세계 성의 차이점, 왜 일본에는 석조 대건축물이 없을까?

일본의 성은 천수각(天守閣)을 비롯해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일본에는 고대부터 인덕천황릉(대산고분), 도다이지(東大寺), 히메지성처럼 세계적인 수준의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일본의 성은 유럽이나 중국의 성곽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세계의 성과 일본 성의 구조적 차이

일본과 세계의 근대 이전 건축물 및 초대형 구조물을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매우 큽니다.

그리스 신전이나 피라미드 같은 세계의 거대 건축물이 거의 일정한 치수로 가공된 석재를 쌓아 만든 것과 달리, 일본의 건축물과 구조물은 주로 흙이나 목재를 중심으로 지어졌으며, 돌은 보조적인 용도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세계의 많은 성들이 석재를 쌓아 올린 성벽과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일본의 성 중 일부는 돌을 쌓아 만든 석벽(石壁)으로 보호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석벽은 기초가 되는 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엄밀히 말해 석조 구조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본에 석조 대건축물이 없었던 이유

일본에서 대규모 석조 구조물이 만들어지지 않은 데에는 몇 가지 자연환경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유라시아 대륙처럼 잘 잘라내고 가공하기 쉬운 퇴적암이 적고, 적합한 석재가 있다 해도 대부분 단단한 덩어리 형태의 화성암이 많았습니다. 둘째, 산지와 하천이 뒤엉킨 복잡한 지형 탓에 무거운 석재를 운반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입니다. 순수하게 돌만으로 지은 건축물을 세우더라도 지진으로 인해 붕괴할 위험이 컸기 때문에, 목조 축량(軸量) 구조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일본 성의 독자적인 발전은 단순한 문화적 차이가 아니라, 일본의 지질과 지형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덕천황릉이나 도다이지처럼 흙을 다루는 기술과 목조 건축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지만, 대규모 석조 구조물이 부족했던 것은 상당 부분 석재의 특성 탓이었습니다.

* 퇴적암과 화성암이란?

퇴적암: 화산재나 생물의 사체 등이 두껍게 쌓인 후 압력에 의해 굳어진 암석입니다. 사암, 석회암 등이 여기에 속하며 비교적 가공이 쉽습니다.

화성암: 마그마가 지표면 또는 지하에서 식으면서 굳어진 암석입니다. 단단하고 덩어리 형태를 이루고 있어 가공이 매우 어렵습니다.

중국과 일본, '성(城)'의 정의가 다르다

흥미로운 점은 '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도시는 '청시(城市)'라고 부르며, '청(城)'은 도시나 지역을 둘러싼 성벽을 의미합니다. 영주가 거주하는 건물은 따로 '궁전(宮殿)'이라 불렀습니다. 만리장성 역시 영어로 'Great Wall', 즉 '거대한 벽'으로 번역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반면 일본에서 '성(城)'은 곧 '캐슬(Castle)', 즉 영주의 저택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성은 기본적으로 영주의 거처이며, 그 주위를 해자(못)나 흙을 높이 쌓은 토루, 그 위에 담을 쌓았다 해도 전체가 돌로만 된 성벽은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중국처럼 '성 = 성벽'이라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에도 시대의 거의 모든 성에는 성하마치(城下町)가 있었고, 성 전체를 해자로 둘러싸는 식의 일종의 마을 방어 개념도 고려되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에도 중국이나 유럽과 달리 서로의 영토와 백성을 파괴하는 전쟁이 아니라 무사(武士) 간의 전투였기 때문에, '성 = 영주의 저택'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고 여겨집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일본에서 성 = 군사적으로 폐쇄된 하나의 구획(영주의 거처)
  • 중국에서 성 = 도시를 둘러싼 성벽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 할지라도 '성'에 대한 개념이 이렇게 달랐던 것이며, 이는 각국의 지리적 환경과 전쟁 방식의 차이가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