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훗날 천하를 손에 넣는 인물이 되지만, 그 출발점은 농민 신분이었습니다. 그가 끝까지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은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라는 든든한 버팀목 덕분입니다. 물론 히데요시 자신의 노력도 컸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준 것은 노부나가였습니다.
그렇다면 히데요시는 은인인 노부나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혼노지의 변의 이변(奇變), 주모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인가?"라는 의문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울지 않으면 죽여버리리라, 시조새(호토토기스)"라는 노부나가의 유명한 일화처럼, 히데요시 역시 그만한 냉혹함을 지닌 인물이었을까요?
혼노지의 변 개요
![[혼노지의 변] 진짜 배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을까?](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45195.jpg)
오다 노부나가는 숙적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武田勝頼)마저 격파하여 다케다 가문을 멸망시켰습니다. 이로써 천하 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됩니다.
그리고 주고쿠 지방 정복을 진행 중이던 하시바(羽柴) 히데요시, 즉 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원군 요청이 들어옵니다.
노부나가는 먼저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를 선발대로 출정시키고, 자신도 뒤이어 직접 출진하기로 합니다.
1582년 5월 29일, 노부나가는 교토의 혼노지(本能寺)에 들어섭니다. 이때 노부나가는 자신의 성에서 명품 다구 38점을 가져왔는데, 그만큼 다도를 깊이 사랑했던 인물이었습니다.
6월 1일, 혼노지에서는 관료와 승려 등 약 40명을 초청해 다과회를 열었고, 그대로 연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무렵 아케치 미쓰히데는 1만 3천의 군세를 이끌고 주고쿠 지방을 향해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토와 서국(사이고쿠)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도착한 미쓰히데는 망설임 없이 교토 방면의 길을 선택해 곧장 진군합니다.
도중에는 말의 편자를 떼어내 버리고, 아시가루(足軽)들에게는 14cm 남짓의 작은 짚신으로 갈아 신게 했습니다. 이는 분명 전투를 대비한 조치였습니다. 가신들은 당시 오사카 부근(사카이)에 머물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를 습격하러 가는 것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그때 미쓰히데의 입에서 놀라운 한마디가 나옵니다.
"오늘부터 내가 천하를 호령하는 자다! 무공은 너희들의 몫이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다음 날 새벽 4시경, 미쓰히데의 군대는 혼노지를 완전히 포위합니다. 노부나가 곁에는 겨우 백여 명의 병사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놓치지 마라!" — 노부나가의 대응이었습니다. 여기서 모두 처리하라는 뜻으로, 그 어떤 동요도 없는 침착함이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혹시 어딘가 이날을 예감하고 있었던 걸까요?
이후의 결말은 모두가 아는 바와 같습니다.
혼노지의 변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누구?
![[혼노지의 변] 진짜 배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였을까?](https://www.historyback.com/article/uploadfiles/202207/2022072209245141.jpg)
'결국 이득을 얻은 자가 범인'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실제로 혼노지의 변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히데요시는 즉시 교토로 돌아와 아케치 미쓰히데를 토벌했습니다. 노부나가의 가신들 중에서도 단연 앞서는 위치에 있던 그는, 그대로 천하로 치솟았습니다.
히데요시가 범인이라는 설의 근거는 노부나가의 필요성이 의심스러운 원군 요청입니다. 히데요시는 주고쿠 지방에서 전투 중이었지만,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이 행동의 배경에는, 미쓰히데의 모반 계획을 관료들을 통해 사전에 입수하고, 미쓰히데가 병력을 모으더라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 두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즉 미쓰히데로 하여금 노부나가를 쳐 죽이게 만든 것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노부나가의 비보를 접한 후의 신속한 행동입니다. 흔히 "주고쿠 대반격(中国大返し)"이라 불리는 그 전설적인 행군입니다.
먼저 약 하루 만에 70km를 질주해 히메지성으로 돌아갔고, 이어 교토까지의 200km를 열흘 남짓 만에 달려 미쓰히데를 기습적으로 맞섰습니다. 일본 역사상 손꼽히는 강행군으로 꼽힙니다.
질주 자체도 빨랐지만, 그에 앞서 이루어진 철수가 비정상적으로 빨랐다는 점이 포인트입니다. 사전에 알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 아닐까요?
그래도 히데요시 흑막설은 성립하기 어렵다!?
노부나가의 원군 요청은 위기 상황 때문이 아니라, 공을 독차지해 노부나가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자기보신 차원이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공은 선배들이 다 챙긴 뒤에!"라는 전형적인 처세술이었던 셈이죠.
실제로 히데요시가 원군을 요청한 것이 아니라 노부나가 스스로 출진을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이른바 노부나가 자발적 출진설입니다.
또한 혼노지의 변 직후, 미쓰히데의 가신들이 히데요시의 성에 들어와 히데요시의 일족이 모두 피신하는 일화도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두 사람 사이에는 밀통이 없었다는 견해도 존재합니다.
철수의 신속함에 대해서도, 사실은 노부나가를 위해 준비된 체제가 그대로 발휘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게다가 첫 70km 질주는 확실히 빠르지만, 200km를 10일에 달린 것은 오히려 평균적인 속도에 가깝다고 합니다.
정리
이상을 종합해 보면, 히데요시 흑막설은 흥미로운 가설이지만 현실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히데요시가 천하를 잡는 길은 그 자신이 스스로 닦아 놓은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혼노지의 변은 지금도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사건으로, 수많은 주모자설이 난무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에도 막부의 기틀을 마련한 텐카이(天海)가 실은 아케치 미쓰히데와 동일 인물이라는 소문도 있으며, "혼노지의 변의 이변 주모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설 또한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