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야시마 전투]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기습 작전과 나스노 요이치의 부채 과녁 신화!

겐페이 전쟁의 격전지 중 하나인 야시마 전투입니다.

말을 타고 가파른 절벽을 내려가 기습하는 작전으로 승리했던 '이치노타니 전투'로부터 정확히 1년 뒤에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야시마 전투에서 타이라 씨는 겐지에게 "배 위에 걸어둔 부채를 활로 쏘아 맞혀 보라!"라며 무리한 도발을 했고, 이것으로 유명해진 전투이기도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야시마 전투의 배경과 함께, '부채 과녁' 에피소드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폭풍우 속 출항! 요시츠네의 작전

1184년,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미나모토노 노리요리와 동생 요시츠네 형제에게 패한 타이라 씨는 야시마(가가와현 다카마쓰)로 도피합니다.

이치노타니 전투 이후 노리요리는 가마쿠라로 돌아갔고, 요시츠네는 교토로 돌아가 치안 유지 임무를 맡았습니다.

고시라카와 법황의 제안도 듣지 않다

타이라 씨는 교토에서 쫓겨날 당시, 천황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온 '삼종신기'를 함께 가져갔습니다. 이를 되찾고 싶어했던 이가 바로 고시라카와 법황이었습니다.

이치노타니 전투 전에 고시라카와 법황은 타이라 씨에게 '화친 협상'을 지시한 바 있습니다. 타이라 씨는 이를 받아들여 무장 해제까지 했지만, 결국 겐지군의 총공격 앞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도 고시라카와 법황은 다시 한번 강화 사절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타이라 씨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같은 수법에 두 번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죠.

바로 '세상의 큰 텐구'라 불리던 고시라카와 법황이었습니다.

노리요리는 주고쿠로, 요시츠네는 시코쿠로

야시마에 머물던 타이라 씨의 세력은 반격의 기세를 되찾으며 주고쿠 지방의 산요도 일대까지 영향력을 뻗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미나모토노 노리요리가 파병됩니다.

그리고 1185년 2월, 전환이 어렵게 흘러가자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역시 파병됩니다.

요시츠네, 카지와라 카게토키와의 불화

시코쿠로 출항하기 전 요시츠네는 카지와라 카게토키와 불화를 겪게 됩니다.

카게토키는 배의 진출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사카로(역돛대)'를 추가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요시츠네는 "오직 앞으로만 나아가고 물러설 줄 모르는 우리 무사들이 어찌 도망칠 생각을 하느냐!"라며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요시츠네는 카게토키의 반대를 무릅쓰고 폭풍우 속에서 단 5척의 배에 말 150필만 싣고 시코쿠로 출항합니다.

보통 3일이 걸리는 항로를 약 4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 엄청난 속도였죠.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야시마의 타이라 씨를 공격합니다.

카게토키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타이라 씨가 도망친 뒤였습니다.

이 일로 카지와라 카게토키는 깊은 원한을 품습니다. 훗날 요시츠네가 형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갈등할 때, 카게토키는 요리토모의 편에 서서 요시츠네를 몰아붙이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사람의 원한은 무섭습니다.

『헤이케 이야기』 "부채 과녁"

요시츠네의 기습에 타이라 군은 바다로 도피합니다. 겐지군이 의외로 소수라는 것을 알아차린 타이라 군은 다시 반격에 나섭니다.

그리고 시간은 저녁이 됩니다. 전장은 일시 휴전 상태가 되었고, 타이라 씨는 여흥을 시작합니다.

그때 아름다운 여인이 탄 작은 배가 나타나더니 "저 부채를 과녁 삼아 쏘아 보라!"라며 도발합니다.

"이것을 쏘아 떨어뜨리지 못하면 겐지의 이름이 꺾이는 것이다!" 이 임무를 맡은 것은 나스노 요이치였습니다.

요이치는 "남(南)의 팔만보살, 우리나라의 신명이시여… 이것을 쏘아 맞히지 못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이다…"라고 기원하며 화살을 쏘았고, 부채를 정확히 꿰뚫었습니다.

겐지와 타이라 양측 모두 이 명중에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헤이케 이야기』 "활 흘려버리기(유미나가시)"

부채 과녁을 꿰뚫은 나스노 요이치. 그 장면에 감명받았는지, 나이 50세가 넘은 타이라의 무사가 배 위에서 부채를 들고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요시츠네는 냉정하지 않았습니다. 요이치에게 "저 무사도 쏘아 맞혀라!"라고 명령합니다. 요이치의 화살은 그 무사에게도 명중했고, 무사는 배 밑바닥에 쓰러졌습니다.

분노한 타이라 군은 다시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 와중에 요시츠네가 활을 바다에 떨어뜨리고 맙니다.

"활을 버리십시오"라는 만류에도 요시츠네는 치열한 공격 속에서 활을 줍기 위해 몸을 던집니다.

요시츠네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활을 아깝다고 주운 것이 아니다. 정예한 활이라면 차라리 적에게 주더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저런 빈약한 활을 적이 주워서 '이것이 겐지 대장의 활이로구나' 하고 비웃으면 대대손손 수치가 될 것이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주운 것이다."

가신들은 자신의 목숨보다 겐지의 이름을 지킨 요시츠네에게 감복했다고 합니다.

마무리

이번 글에서는 야시마 전투에서 폭풍우 속 출항, 카지와라 카게토키와의 불화, 『헤이케 이야기』로도 유명한 '부채 과녁'과 '활 흘려버리기' 에피소드를 소개했습니다.

겐페이 전쟁에서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의 활약은 눈부셨지만, 카지와라 카게토키와의 갈등이나 무모한 기습 작전 등 요시츠네의 독선적인 면모도 있었고, 주변 가신들의 불만도 상당히 쌓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형 요리토모와 다투던 시기에도 요시츠네를 변호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야시마 전투 당일 밤, 지친 병사들이 잠든 사이 타이라 군이 야간 습격을 계획하기도 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야습이 성공했다면 타이라 씨가 승리했을지도 모르는 국면이었습니다.

성과를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하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 또한 리더의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