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의 아들이면서도 무사를 꿈꾸던 곤도 이사미와 함께 교토로 올라가 신센구미를 결성한 히지카타 토시조.
드디어 두 사람은 무사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 후 두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신센구미의 패배
곤도 씨와 히지카타 씨는 막신(幕臣), 즉 막부에 직속하는 무사로 등용됩니다.
그러나 불과 4개월 만에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장군직을 사임하며 대정봉환(大政奉還)을 단행하고 맙니다.
대정봉환이란 정권을 막부에서 천황에게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가마쿠라 막부 시대부터 이어져 온 막부의 통치가 사실상 끝났음을 의미하는 순간이었지요.
이제 신센구미는 구막군(舊幕府軍)으로서, 사쓰마와 조슈가 이끄는 신정부군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뒤바뀌는 격변기, 낡은 것이 밀려나가는 고독함이 느껴집니다.
결국 구막군은 신정부군의 대포 등 서양식 무기를 앞두고 패배를 거듭합니다.
히지카타 씨 역시 "대포 앞에서는 칼도 창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일본식 의복 대신 양복을 입기 시작합니다. 유명한 사진 속에서도 양복 차림을 한 모습이 보이는데요. 상당한 멋쟁이였던 모양입니다.
교토에서, 그리고 갑주국(甲州國, 현 야마나시현)에서 패전한 뒤, 신센구미 초창기부터 함께 활동했던 이누에 겐자부로가 전사하고, 나가쿠라 신파치와 하라다 사노스케가 탈퇴합니다. 마침내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벗이자 국장(局長), 곤도 이사미마저 나가레야마(치바현)에서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동지(盟友), 곤도 이사미의 죽음
곤도 씨는 "적에게 잡히면 무사답게 할복하자"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에는 이름은 유명해도 얼굴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기에, 곤도 씨는 '오쿠보 야마토'라는 가명으로 위장하고 있었습니다.
히지카타 씨는 "끝까지 몸을 숨기고 살아서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러나 적진에 전직 신센구미 대원이 있었고, 그가 곤도 이사미 본인임은 금방 들통나고 말았습니다.
히지카타 씨의 소망은 헛되었고, 곤도 씨는 참수형에 처해졌습니다.
평생 꿈이던 무사의 신분은 얻었지만, 그 대가는 너무나 컸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벗 곤도 이사미를 잃은 히지카타 씨는 구막군으로서 최후까지 싸워나갔는데, 과연 그 마음은 어땠을까요?
북으로, 북으로… 그리고…
에도 성이 적수에 넘어가고, 곤도 이사미마저 세상을 떠난 뒤, 히지카타 씨는 전장을 찾아 계속해서 북으로 향합니다.
우쓰노미야 성 전투에서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아이즈 전투(후쿠시마현)에서는 크게 패배합니다. 도호쿠 여러 번(藩)들도 하나둘 신정부군에 항복해 갑니다.
히지카타 씨는 센다이에서 배에 올라 마지막 목적인 하코다테로 향합니다.
하코다테의 고료카쿠(五稜郭)에서 그는 하코다테 정부(에조 공화국)를 세웁니다. 에조치(蝦夷地, 현 홋카이도)에 새로운 나라를 만들 생각이었던 걸까요?
그러나 신정부군은 구막군을 끝까지 추격해 공격해 옵니다.
당시 히지카타 씨의 마음은 매우 평온했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새 정부 수립을 놓고 들떠 있는 동안에도 "지금은 떠들 때가 아니야!"라며 홀로 침묵을 지켰습니다.
전투 중에도 부하들을 돌보며 술잔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취해서 전투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니 한 잔만!"이라며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지요.
교토에서 '신센구미 부국장'이던 시절의 기개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유품과 사진을 가족에게 전해달라고 소동(小姓)에게 부탁했습니다.
스스로 죽음을 예감했던 것이겠지요.
마침내 하코다테 잇폰기 관문에서 적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향년 35세. 아이러니하게도 벗이었던 곤도 이사미와 같은 나이였습니다.
6일 후, 구막군은 드디어 항복합니다. 마지막 요새였던 사람은 히지카타 토시조였습니다.
히지카타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해석!?
히지카타 씨가 전사한 지 불과 6일 만에 구막군은 항복합니다. 하코다테 정부의 요인 8명 가운데 전사한 사람은 히지카타 토시조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항복에 끝까지 반대하며 완강히 버틴 사람이 히지카타 씨뿐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런 이유로 그의 죽음이 자기 편에 의한 암살이 아니었을까 하는 설도 있습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이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무리
꿈을 이루기 위해 도장에서 매일같이 검술 수행에만 몰두하던 나날들.
신센구미의 영화롭던 시절.
비로소 무사가 될 수 있었던 날.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고, 천황에게 '조적(朝敵)'으로 몰린 채 전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벗 곤도 이사미의 죽음은 히지카타 씨의 마음속에 크나큰 구멍을 내버렸을 것입니다.
계속 싸우든, 새로운 정권이 세워지든, 곤도 씨 없는 세상에 산다는 것 자체에 생명의 희열을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죽을 곳을 찾아 헤매던 남자.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