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나오에 가네쓰구가 세상을 떠난 곳은 지금의 경시청일까?

나오에 가네쓰구가 세상을 떠난 곳은 지금의 경시청일까?

2009년 NHK 대하드라마 『천지인』에서 배우 쓰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하며 큰 인기를 얻은 전국무장 나오에 가네쓰구(直江兼続). 그를 상징하는 것은 단연 투구에 새겨진 '愛(사랑)' 글자입니다.

너무나도 시크하고 멋진 이 글자는 단순한 'LOVE'가 아니라 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로 치면 응원 구호 같은 느낌이지만,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나오에 가네쓰구가 죽은 곳이 과연 오늘날의 경시청인가?"라는 주제로 위인들의 '인연의 땅'을 찾아 떠나보겠습니다.

나오에 가네쓰구는 어떤 인물?

나오에 가네쓰구가 세상을 떠난 곳은 지금의 경시청일까?

1560년, 가네쓰구는 에치고(현재 니가타현)의 히구치 가문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다만 출생지와 부모에 대한 기록은 확실하지 않아 여러 설이 전해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전국무장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을 섬겼으며, 이후 우에스기 가문을 계승한 우에스기 가게카쓰(上杉景勝)의 소수(小姓)로 발탁되어 곁에서 자랐습니다.

가게카쓰가 가독을 물려받은 직후, 그의 측근이던 나오에 노부쓰나(直江信綱)와 야마자키 슈센(山崎秀仙)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후계를 잃은 나오에 가문을 잇기 위해 가네쓰구는 나오에 가문의 양자로 들어갔고, 노부쓰나의 전처였던 센(船)과 재혼했습니다. 가네쓰구에게는 첫 결혼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우에스기 가문의 가로(家老)가 되어 평생 가게카쓰를 보좌했습니다. 정말로 평생을 함께한 셈입니다. 이 사건에는 좋지 않은 소문도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관련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를 앞두고, 가네쓰구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전쟁의 불씨가 된 소위 '나오에장(直江状)'을 보내 그를 분노하게 만듭니다. 그 결과 서군에 가담해 패한 우에스기 가문은 가명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아이즈(현재 후쿠시마현) 120만 석에서 데와 요네자와(현재 야마가타현) 30만 석으로 대폭 감봉당하고 말았습니다.

석고가 4분의 1 수준으로 줄며 우에스기 가문은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렸지만, 가신의 수는 줄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함께 힘을 합쳐 번영을 되찾자!"라는 신념이었겠죠. 가네쓰구 본인 역시 검소한 생활을 하며 영지 재건에 매진했고, 이 무렵 이름을 '나오에 가게아키(直江景明)'로 개명했습니다.

그 결과 요네자와 번은 공식 석고 30만 석이었지만, 실질 석고는 51만 석에 달했다고 전해집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개발 사업이 성공한 것입니다.

또한 세키가하라에서 적대했던 도쿠가와 가문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혼다 마사노부(本多正信)의 차남을 양자로 맞아들이기도 했습니다. 1614년 오사카 진(大坂の陣)에서는 도쿠가와 측으로서 도요토미 가문과 싸웠습니다.

1619년 3월, 가네쓰구는 요네자와를 떠나 에도에 들렀다가, 도쿠가와 2대 쇼군 도쿠가와 히데타다(徳川秀忠)의 상락에 따라 가게카쓰와 함께 교토로 향합니다. 이미 병환 중이었죠. 10월, 몸살로 에도에서 누워 지내던 그는 두 달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네쓰구가 사망한 에도 저택, 현재의 경시청!

가네쓰구는 1619년 12월 19일, 60세를 일기로 병사했습니다. 사인은 결핵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선조의 미남 대장 오키타 소지(沖田総司)와 같은 병입니다.

요네자와 번 우에스기 가문의 에도 번저(藩邸)는 현재 붉은 벽돌 건물이 인상적인 법무성 옛 청사 자리이며, 이곳에는 번저 터 비석도 세워져 있습니다.

나오에 가네쓰구가 세상을 떠난 곳은 지금의 경시청일까?

그리고 가네쓰구가 숨을 거둔 곳은 그 번저 맞은편의 '우로코야시키(鱗屋敷, 비늘 저택)'로, 바로 지금의 경시청 부지입니다.

경시청 부지는 삼각형 모양인데, 이 형태가 물고기 비늘과 닮았다고 해서 '비늘 저택'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나오에 가네쓰구가 세상을 떠난 곳은 지금의 경시청일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에도성의 사쿠라다몬(桜田門)이 이 비늘 저택과 요네자와 번저 바로 맞은편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곳은 막말의 격동기에 일어난 그 유명한 '사쿠라다몬 사건'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나오에 가네쓰구가 세상을 떠난 곳은 지금의 경시청일까?

그리고 18년 뒤인 1637년, 가네쓰구의 아내 센 역시 같은 비늘 저택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곳을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가네쓰구가 살았던 시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막말의 격변 속에서 사쿠라다몬 밖에서 벌어졌던 기묘한 사건들을 상상해 보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